[향토밥상] 해산물이나 나물로 휘뚜루마뚜루 끓여내 ‘한입 후루룩’…‘찜국’을 아시나요
[향토밥상] (24)경남 창원 ‘찜국’ 경상도 토박이라면 다아는 맛 국처럼 끓이지만 찜처럼 ‘걸쭉’ 넣은 재료따라 이름 수십가지 진해만 풍부한 미더덕 등 활용 고소한 들깨향 입안 가득 퍼져 수수하고 깊은맛 매력에 ‘꿀떡’
“어렸을 때 엄마가 아침으로 자주 끓여줘서 학교 가기 전에 후루룩 먹곤 했죠. 요즘은 옛날 생각하면서 제가 아들한테 끓여주곤 해요. 집에 있는 재료로 휘뚜루마뚜루 끓일 수 있거든요.”
경상도 토박이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면 ‘찜국’을 아는지 물어보면 된다.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이에겐 숱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음식이지만 타지 사람이 보기엔 여간 생소한 게 아니다. 찜국을 요리할 땐 국처럼 냄비에 물과 재료를 넣고 팔팔 끓이지만 완성된 걸 보면 들깻가루와 찹쌀가루가 아낌없이 들어가 찜처럼 걸쭉하다. 재료 역시 찜에 많이 쓰는 고사리·토란·미더덕이 주로 활용된다.
찜국은 이름이 수십가지다. 맛을 낸 재료를 이름 앞에 붙여 ‘○○ 찜국’이라 부른다. 해산물이 풍부한 해안지방에선 다슬기·조개 등을 넣어 끓이는 게 보편적이었고 내륙지방에선 나물류를 활용했다. 정해진 재료가 따로 없으니 냉장고 속 남은 재료를 처리하기에도 알맞다. 시들기 직전의 머위·버섯·시래기 등을 넣고 끓이면 근사한 식사가 완성된다.
경남 창원 사람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단연 ‘미더덕 찜국’이다. 창원시 남쪽 해안에 있는 진해만에선 미더덕이 전국 생산량의 70%에 이를 정도로 많이 난다. 특히 과거엔 보릿고개에 맞춰 살이 오른 미더덕으로 주린 배를 채우기도 했다. 집집마다 봄에 제철을 맞는 미더덕으로 찜국을 한 냄비씩 끓여두곤 했다.
찜국은 만들기 쉬워 보여도 손맛을 많이 탄다. 파·마늘·고춧가루·후추·참기름 등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아 기교를 부릴 수 없는 요리다. 간은 오직 간장으로만 맞춰 담백한 맛을 살린다.
요리 순서는 간단하다. 냄비에 물을 끓이고 나물이나 해산물 등 맛을 낼 재료를 넣는다. 이때 단단한 재료를 먼저 넣고 무른 재료는 나중에 넣어야 각 재료 특유의 식감이 살아난다. 찹쌀가루와 들깻가루를 1대 2 비율로 섞고 가루가 어느 정도 풀어질 정도만 물을 넣는다. 이를 냄비에 부어 농도를 맞추고 푹 끓인다. 마지막에는 미나리나 부추를 고명으로 올려주면 향긋함이 배가 된다.
집에서 별스럽지 않게 먹던 음식이라 전문점을 찾긴 어렵다. 한정식집에서 가끔 볼 수 있고 추어탕 식당 가운데 메뉴에 올린 곳도 더러 있다. 창원시 의창구 ‘가마솥추어탕’에서도 20년 넘게 찜국을 팔고 있다. 메뉴판을 뒤적여봐도 아쉽게 미더덕 찜국은 없다. 종업원이 반찬을 내려놓으며 “요샌 찾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식당에선 안 판다”고 설명한다. 대신 관광객을 위해 쫄깃한 식감을 살린 전복 찜국을 준비했단다.
찜국을 주문하니 10여분 만에 큼지막한 한 뚝배기가 나왔다. 찜국은 처음부터 숟가락으로 한입 크게 떠먹다간 큰코다친다. 겉으로 봤을 땐 김이 별로 나지 않아 안 뜨거워 보이지만 걸쭉한 국물에 가둬져 있는 열기가 엄청나 입천장을 데기 쉽다.
처음엔 찜 먹듯 젓가락으로 건더기를 건져 먹어야 한다. 부추·배추·만가닥버섯이 푸짐하게 들어 있다. 밥에 올려 쓱쓱 비벼 먹으니 자박한 국물 덕분에 꿀떡꿀떡 잘 넘어간다. 시간이 지나면 국물도 조심스럽게 떠먹어본다. 고소한 들깨향이 입안 가득 맴돈다. 아직 뜨거운 국물이 천천히 식도를 타고 내려가 몸을 데워준다.
수수하고 깊은 맛이 매력적인 찜국. 자극적인 맛과 화려한 볼거리에 이미 익숙해졌다면 처음엔 친해지기 어려운 음식일 수 있다. 하지만 먹고 나면 속이 편안할 뿐만 아니라 자기 전 문득 생각나는 묘한 매력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