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물론이고 신문 지면에서도 ‘신박하다’라는 표현이 쉽게 발견된다. ‘새롭고 놀랍다’라는 뜻의 신조어라고 하는데,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개방형 한국어 지식 대사전 ‘우리말샘’에도 표제어로 등록돼 있다.
‘신박하다’의 어원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World of Warcraft) 갤러리(와우 갤러리)’의 누리꾼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온라인게임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캐릭터 중 하나인 ‘성기사(Paladin)’를 줄여서 ‘기’라고 표현했는데, 그것이 금지어로 등록되자 대신 ‘박’을 사용했다.
이는 누리꾼들이 성기사를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바퀴벌레’ 같다고 표현하며 부른 것이다. 즉 그들은 ‘신성 성기사’를 ‘신박’으로 줄였다. 그 후 와우 갤러리에서 활동하는 누리꾼들은 어떤 단어든 ‘기’가 보이기만 하면 ‘박’으로 치환하는 말놀이를 했다. ‘칭기즈칸’은 ‘칭박즈칸’으로, ‘기절초풍’은 ‘박절초풍’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말놀이는 30년 전에도 유행했다. 당시 젊은이들은 발음장애가 있는 한 어리바리한 병사의 암구호 사건을 다룬 우스개를 즐겼다. ‘ㅏ’를 ‘ㅣ’와 유사하게 발음하는 습관이 있는 병사가 있었는데, 사건이 발생한 날 암구호는 문어(問語) ‘옥수수’, 답어(答語) ‘감자’였다. 초병(초소 경계근무를 하는 병사)이 그에게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옥수수!”라고 문어를 말하자, 그는 “김지”라고 답어를 말했다. 초병이 “옥수수”라고 재차 다급하게 말하자, 그는 다시 “김지”라고 말했다가, 당황해하며 “고구미”라고 고쳐 말했다. 그 후 그는 “김진기, 고구민기?”라고 혼잣말을 했다.
상대방이 3회 이상 암구호를 틀리거나 답어를 말하지 않으면 초병이 공포탄 또는 실탄을 발사할 수 있으므로 그다음 이야기는 말하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쨌든 당시 언중(言衆)은 “감잔가, 고구만가?”를 “김진기, 고구민기?”라고 표현하는 말놀이를 즐기며, ‘김진기, 고민기, 구민기’라는 이름을 가진 애먼 친구를 놀렸다.
‘칭박즈칸’ ‘박절초풍’ ‘김진기’ ‘고구민기’와는 달리 ‘신박하다’가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은 언중이 ‘신박하다’를 기존 한국어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결과다. 온라인게임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신박하다’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언중은 ‘새롭다’와 ‘쌈박하다’ ‘대박이다’라는 뜻이 결합된 복합어로 ‘신박하다’를 정의하고, ‘참신’ ‘신기’ ‘쌈박’ ‘대박’의 의미가 어우러진 표현으로 사용한다. 네이버 국어사전의 ‘오픈사전’은 누리꾼이 그 의미를 등록할 수 있는데, 여기에선 ‘신박하다’의 뜻을 5가지로 풀이한다. 이처럼 언중은 ‘신박하다’에 추가 의미까지 부여해 사용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한 영역에서 만들어진 단어가 전 사회로 확산돼 쓰이면서 새로운 의미를 갖는 것은 ‘사회적 혁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언중은 ‘신박하다’를 사용하며 한국어 영토를 확장했다. ‘신박하다’는 조만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표제어로 등재될 것이 확실하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