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늪에 빠진 축산물…축종별 경쟁력 강화방안 찾아야
입력 : 2019-04-17 00:00
수정 : 2019-04-17 23:53

국내시장, 외국산 잠식 위기 쇠고기·돼지고기 수입량

지난해 역대 최고치 기록 축산강국 관세철폐도 다가와

전문가들, 시장방어 한목소리 한우 생산비 낮춰 가격차 축소 돼지 유통과정 투명화 등 주장

소비자가 원하는 점 공략하는 생산·유통 시스템 구축 의견도
 


국내 축산물시장에 대한 외국산의 공세가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외국산은 국내산보다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저가시장을 파고들더니 이제는 고급화·다양화 전략으로 고급육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국내 축산업계는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는 형국이다.



◆밀려오는 수입 축산물=지난해는 그야말로 수입 축산물이 국내시장에 쏟아졌던 해였다. 쇠고기와 돼지고기 수입량은 각각 41만5000t, 46만3000t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제품 수입량(원유 환산 기준) 역시 221만4000t에 달해 원유자급률이 최초로 50% 밑으로 떨어졌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축산강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관세철폐 기한이 다가오고 있어서다. 수입 쇠고기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산 쇠고기의 관세는 2026년에 완전히 철폐된다. 호주산도 2028년이면 무관세로 들어올 예정이다. 이에 따라 판매가격은 지금보다 각각 17.6%, 21.1% 정도 하락할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최근 국회에서 네덜란드·덴마크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안이 통과돼 유럽산 쇠고기도 국내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돼지고기 역시 2021년이면 미국산과 유럽연합(EU)산 모두 무관세로 수입된다. 수입 유제품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치즈도 EU산과 미국산의 관세는 2026년에 완전히 철폐된다.

그동안 주로 저가시장을 공략했던 수입육이 고급육시장을 넘보고 있다는 점 역시 문제다. 냉장 쇠고기 수입량은 2016년 5만1000t, 2017년 6만6000t, 2018년 8만9000t으로 꾸준히 늘었다. 돼지고기는 스페인산 이베리코처럼 품종을 앞세워 고가시장을 침투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이는 그동안 국내산 축산물이 값싼 외국산에 대응해 구축한 고급화·차별화 전략에 차질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수입 축산물의 파상공세를 지켜본 한 축산업계 전문가는 국내 축산업의 현주소를 ‘끓는 물속 개구리 신세’에 비유했다.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에서 죽음이 다가오는 줄 모르는 개구리처럼 외국산에 야금야금 잠식당하지만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두손을 놓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물의 온도는 점점 더 뜨거워질 것”이라며 “축산업계가 힘을 합쳐 국내 축산물시장의 방어선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우는 가격경쟁력 향상, 돼지는 유통 투명화에 집중해야=전문가들은 축종별 경쟁력 강화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한우는 생산비 절감을 통한 가격경쟁력 강화가 최우선과제로 지적된다. 한우 비육우 생산비(100㎏ 기준)는 2015년 94만3000원, 2016년 99만6000원, 2017년 101만8000원으로 계속 증가했다. 이는 한우고기의 가격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에 따라 수입 쇠고기와 가격격차를 줄이려면 체계적인 출하시기 조절, 과학적인 사양관리 등으로 생산비를 낮춰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돼지는 유통과정에서의 수입 돼지고기 견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축산종합컨설팅업체인 정P&C연구소의 정종현 전무는 “수입 돼지고기시장을 어떻게 잡느냐가 관건”이라면서 “원산지 표기를 강화해 수입 돼지고기 유통과정을 투명하게 만드는 한편 국내산의 안전성을 내세우는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는 외국산 유제품에 대해서는 견제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공감을 얻고 있다. 대책의 하나로 ‘용도별 원유 차등가격제’가 떠오르고 있다. 이 제도는 마시는 우유의 원유가격은 높게, 치즈 등 가공용 원유가격은 낮게 책정하는 것이다.

소비자 중심의 생산·유통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승헌 건국대학교 축산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이 국내산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 공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내산 축산물을 저렴하게 소비할 수 있도록 직거래창구를 확대하거나 1인가구용 소포장 한우고기, 유아용 유제품 등 소비자 맞춤형 상품을 개발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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