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AI 소독약 희석농도 ‘엉망’…효과 없는 맹탕 수두룩
입력 : 2018-11-12 00:00
수정 : 2018-11-11 21:14
상당수 축산관련시설에서 소독약을 제대로 희석하지 않고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거점소독시설에서 차량 등을 허술하게 소독한 게 병원체의 수평 전파를 초래했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없음.

최농훈 건국대 교수 ‘방역현장 실태조사’ 결과 발표

구제역 대상 시설 215곳 중 단 7곳만 적정농도 사용 잘못된 약품 사용 사례도

병원체 수평 전파 위험성 높은 공공축산시설도 상황 비슷 소독약 보충 늦어 물만 분사

농가·관계자에 용법 교육해야 간이 검사키트 개발 목소리도

 

한동안 일부 축산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국내에서 시판되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와 구제역 소독약의 품질에 의문이 제기돼왔다. 성실하게 소독했는데도 효과를 보지 못한 사례가 나타나 문제 원인을 소독약 탓으로 추측한 것이다.

이런 연유로 농림축산검역본부도 국내에서 팔리는 소독약의 함량을 전수조사한 뒤 부적합한 제품을 퇴출시켜왔다. 더불어 동물약품기술연구원은 2차로 효력검사를 실시해 품질을 재확인한다.

최근 소독약의 잘못된 사용이 방역 실패의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농훈 건국대학교 교수가 ‘AI·구제역 방역 현장 소독약 사용 실태조사’를 한 결과 적합하지 않은 약제를 사용하거나 유효농도에 미치지 않는 희석액을 뿌려 소독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이 밝혀져서다.



◆멀쩡한 소독약, 맹탕으로 뿌려=최 교수 연구팀은 2017년 2~5월 사이 경기·충남·충북 3개 도, 20개 시·군의 축산관련시설 277곳에서 322건의 소독약 시료를 채취했다. 구체적인 채취 장소는 우제류 및 가금류 생산농가와 거점소독시설·도축장·사료공장 등 축산관련시설이었다.

일반적으로 소독약은 권장 희석배수의 1~2배 수준으로 희석해야 적정 농도를 유지할 수 있다. 권장 희석배수란 방역 현장에서 소독제가 효과적으로 효력을 발휘하기 위한 희석량을 의미한다.

농림축산검역본부의 소독제 효력지침 고시를 보면 권장 희석배수는 소독약 효력이 인정되는 최소량의 유효성분에 대한 희석액 배수(유효 희석배수)의 80% 수준을 기준으로 표기하게 돼 있다. 

그런데 채취한 시료를 분석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구제역 방역 대상인 215곳 중 불과 7곳(3.5%)만 소독약을 적정 농도로 희석해서 사용했다. 저농도로 희석해 사용한 사례가 60곳, 소독약 성분이 거의 없어 ‘맹탕’이나 다름없는 경우가 27곳, 잘못된 약품 사용 등 부적합 사례가 22곳, 고농도로 사용한 게 99곳이었다.

80곳의 AI 방역 현장에서도 11곳만 소독약을 적정 농도로 사용한 반면 저농도 25곳, 맹탕 소독 15곳, 부적합 4곳, 고농도 25곳으로 드러났다. 절반이 넘는 44곳이 소독약을 잘못 사용했다.

이를 토대로 분석하면 AI·구제역 방역 현장인 축산관련시설의 거의 절반 이상에서 소독약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최 교수는 “소독약을 적정 농도로 희석해야만 제대로 된 소독효과를 볼 수 있다”면서 “맹탕과 다름없는 희석액이나 부적합한 소독약을 쓰고도 제대로 소독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수평 전파 위험성 높아=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철저한 방역이 이뤄져야 할 공공축산시설에서도 이같은 사례가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이곳은 축산 관련 차량의 이동량이 많은 장소라서 병원체의 수평 전파 위험성이 높다.

이번 조사에서 구제역 방역 대상인 도축장 14곳과 사료공장 4곳 가운데 적정 농도로 소독약을 뿌린 경우는 아예 없었다. 특히 13곳(72%)이 저농도 또는 맹탕인 소독약을 뿌렸다. AI 방역 대상(도계장 6곳과 사료공장 4곳) 중에서도 8곳(80%)이나 이같은 경우에 해당했다.

축산 관련 차량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거점소독시설도 전국 14곳 중 6곳에서 소독약을 잘못 사용하고 있었다.

공공축산시설에서 소독약을 제대로 희석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계의 희석 방식 때문이었다. 이곳에 설치된 방역기계는 대부분 반자동식으로 소독약을 희석해 사용한다. 즉 소독약 탱크에 물은 자동으로 보충되고 소독약만 수동으로 투입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반자동식 기계를 사용할 때는 소독약이 떨어지는 시간에 맞춰 약을 보충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얘기다.

최 교수는 “반자동식은 사람이 일일이 소독횟수를 세면서 소독약 잔여량을 계산하지 않으면 물만 분사될 수 있다”면서 “공공축산시설은 차량 이동량이 많아 소독약의 잔여량을 자주 확인하지 않으면 물만 자동으로 보충돼 맹탕소독약이 뿌려질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정부, 대안 마련해야=축산농가나 방역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소독약 사용법 교육이 시급해 보인다. 일선 축산 현장에서 적합한 소독약을 용법대로 희석해 뿌리는 것만 잘해도 방역효과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공공축산시설은 행정지도 등을 통해 소독 실태를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소독약 희석배율 준수 여부는 물론 설치된 방역기의 효력도 자세히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소독약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간이 검사키트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일선 방역 현장에서 소독약이 유효 농도인지를 한눈에 바로 파악할 수 있는 간이 키트가 있다면 방역 효율이 높아질 수 있어서다.

최 교수는 “겨울철에 많이 쓰이는 산화제 소독약의 성분을 검사할 수 있는 간이 키트라도 먼저 개발된다면 곧장 현장에서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윤슬기 기자 sgyoon@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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