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 역사산책] 새해 첫날 권농과 경로사상 실천
입력 : 2019-01-23 00:00
수정 : 2019-01-25 23:36
일러스트=이철원

신병주의 역사산책 (2)정조의 40세 새해맞이

역대 왕 어진 봉안한 선원전에서 가장 먼저 인사 올리며 예 표한 후

70세 넘은 대신에게 쌀·고기 내려

농사 권장하는 권농 윤음 통해 백성의 복이 농사서 비롯됨 알려
 


1752년생 정조는 1791년(정조 15년) 1월, 40세의 새해를 맞이했다. 왕으로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 시기의 새해 첫날 정조의 모습은 <일성록(日省錄)> 1월1일 기록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일성록>은 정조가 세손 시절 경희궁 존현각에서 쓰기 시작한 일기로, 왕이 된 후에는 매일의 국정을 기록하는 일기가 됐다.

정조는 먼저 역대 왕의 어진(御眞·왕의 초상)을 봉안한 선원전(璿源殿)에 나아가 인사를 올렸다. 이어 예조 관리들의 인사를 받고, 4일에는 종묘와 경모궁(景慕宮·사도세자를 모신 사당)에서 예를 표할 것을 명했다. 나머지 왕실 사당을 찾는 날짜도 모두 10일 이전에 잡아둘 것을 지시했다. 새해를 맞아 경로사상을 직접 실천하기도 했다. 종신(宗臣)으로서 가장 나이가 많고 벼슬한 지 오래된 서계군에게 별도로 음식물과 옷감을 줬으며, 70세를 넘은 대신들에게도 특별한 대우를 해줬다.

정조는 교서를 내려 다음처럼 지시했다. “판부사 이복원과 좌의정(채제공)은 대신이자 각신(閣臣)이다. 나이가 모두 일흔이 넘었지만 정력이 왕성하여 젊은이와 다름이 없다. 좌의정이 근래에 혼자서 수고하는 것으로 말하면 젊은이도 억지로 할 수 없는 일이라 내가 항상 칭찬하고 감탄하고 있다. 두 대신의 집에는 원래의 정식 외에 더 보내주고, 이어서 낭관으로 하여금 문안하게 하라.” 또한 “새해를 맞아 축하하는 일로는 노인을 공경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면서 나이 일흔을 넘겨 내외가 해로하는 신하 13명에게는 별도로 쌀과 고기를, 그 부인에게는 명주를 주도록 지시했다. 게다가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의 해당 관리들에게는 별도로 문안하도록 했다. 지사 송제로는 81세이고 정부인 엄씨는 80세, 전 참판 서병덕은 80세, 정부인 박씨는 74세였다. <일성록>을 보면 당시 70세 이상 해로한 신하들의 구체적인 명단까지 확인할 수 있다.

정조가 새해를 맞아 농사를 권장하는 윤음(綸音·왕이 백성이나 신하에게 내리는 글)을 내리면서 그 취지를 피력한 점도 주목된다.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새해에도 농사에 매진할 것을 각 도의 관리들에게 당부한 것이다. “내가 하늘과 조종(祖宗)의 보살핌에 도움을 받아 지난해 경술년(1790년)에 나라에 원량(元良·세자)을 두게 되었고 가을에는 풍년이 들었다. 성인이 탄생하신 해에 맞춰 상서로운 징조를 얻었으니 내가 온 나라와 더불어 그 경사를 함께하면서 백성을 사랑하는 일념은 언제나 은혜를 널리 베푸는 데 있고, 거듭 풍년이 들었으면 하는 바람은 금년에 더욱 간절하다. 지금 해가 새로 바뀌어 원량의 키가 점점 자라고 봄철이 돌아와 만물이 화기를 머금고 있는 이때에 만백성을 위해 자나 깨나 말없이 축원하는 것은 농사가 잘되라는 것이다.” 또 “한해 전 세자(후의 순조)를 얻어 풍년이 들었고, 이 기쁨이 새해에도 계속 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이어 정조는 자신이 왕위에 오른 후 새해에 매번 권농 윤음을 내리는 이유에 대해 “내가 왕위에 오른 이후 새해에는 언제나 권농 윤음을 내린 것은 곧 삼가 열성조께서 근본을 중시하고 농사에 힘쓰셨던 거룩한 법도를 계승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새해를 맞아 무엇보다 농사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나는 백성이 하늘로 삼는 것을 소중히 여겨 ‘권농’이란 두 글자를 앞에 닥친 많은 일 가운데 첫째가는 급선무로 삼으려고 한다. 농사의 순서를 계획하고 밭에 나가 일하는 것도 오늘로부터 시작되고, 정월을 맞아 쟁기를 손질하는 것도 오늘로부터 시작되니, 곡식을 실을 만 대의 수레를 구하고 곡식이 창고에 높이 쌓이는 것도 오늘로부터 시작된다. 만백성과 함께 만세토록 태평한 복을 누리는 것도 오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 내 어찌 이해 이날에 정성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일성록>을 통해 선원전 행차, 종묘와 경모궁의 행차 점검, 70세 이상 신하들에 대한 축하, 권농 윤음의 반포 등 40세를 맞이한 정조의 새해 첫날 모습을 구체적으로 만나볼 수 있다.
 



신병주는…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KBS <역사저널 그날> 진행 ▲KBS1 라디오 <신병주의 역사여행> 진행 중 ▲한국문화재재단 이사 ▲저서 <조선의 참모로 산다는 것> <조선의 왕으로 산다는 것> <조선 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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