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 역사산책] 세배하고 떡국 먹고…오늘날과 비슷하네
입력 : 2019-01-16 00:00
수정 : 2019-01-16 23:57
일러스트=이철원

신병주의 역사산책 (1)역사 속 설날 풍경

한해 맞이하는 기대와 설렘 ‘가득’

궁궐서는 왕에게 새해 문안 올리고 팔도 수령들이 하례글·특산물 보내

일반 백성들은 정조 차례행사 치러 신년 운수 보는 윷점·오행점도 즐겨

친척·지인들 만나면 덕담 주고받아
 


역사는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역사 속 인물과 사건·생활의 현장들은 현재에도 생생하게 되살아나 많은 울림을 준다. 본 연재는 민초들의 생활상부터 왕실의 암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 속 그 현장으로 독자들을 안내할 것이다. 역사의 길을 산책하며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점을 생생히 체험했으면 한다.



2019년 기해년 한해가 시작됐다. 한해를 맞이하는 기대와 설렘은 우리 선조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 후기의 학자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나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志)> 등의 기록에는 설날 풍속에 관한 내용이 다수 기록돼 있다. 궁궐에서는 삼정승이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새해를 하례하는 전문(箋文)을 왕에게 올린 후에 정전 뜰에서 새해 문안드리는 의식을 행했다. 팔도의 관찰사와 현재의 시장·군수에 해당하는 수령들은 왕에게 하례하는 글과 함께 특산물을 올렸다. 일반 백성들은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정조(正朝) 차례행사를 치렀다. 남녀 아이들은 차례가 끝나면 새 옷인 ‘설빔’을 입고 어른들과 동네의 연장자를 찾아 새해 첫인사를 드리는 ‘세배’를 했다. 세배를 하고 ‘세찬(歲饌)’과 ‘세주(歲酒)’를 받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각 관청의 하급 관리들은 자신의 명함을 상급 관원들의 집에 가서 옻칠한 쟁반에 넣어놓았는데, 이를 ‘세함(歲銜)’이라 했다. 하례객들은 백지로 만든 책에 서명을 하고 가기도 했는데, 오늘날 방명록에 이름을 적는 것과 유사하다.

설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인 떡국에 대한 기록은 <동국세시기>에 자세하다. “멥쌀가루를 쪄서 떡판에 놓고 나무자루가 달린 떡메로 무수히 찧은 다음 손으로 둥글게 하여 기다랗게 늘여 만든 것을 백병(白餠·가래떡)이라 한다. 이것을 얄팍하게 돈같이 썰어 장국에다 넣고 쇠고기나 꿩고기를 넣고 끓인 다음 후춧가루를 친 것을 탕병(湯餠·떡국)이라 한다.” 그리고 그다음은 이렇다. “떡국은 차례상에 오르거니와 손님 접대에 쓰므로 세찬에 없어서는 안될 음식이다.” 또한 “세속에 나이 먹는 것을 떡국을 몇그릇 먹었느냐고 한다”라 해서 당시에도 떡국을 먹어야 한살을 먹는다고 생각했다.

한해의 운수를 보는 데는 윷점과 오행점(五行占)이 있었다. 오행점은 나무를 장기짝처럼 만들고 거기에 화·수·목·금·토의 글자를 새겨 놓고 그것이 자빠지고 엎어진 모습을 보고 점괘를 얻는 것으로 윷놀이와 비슷했다. 근엄한 선비들도 승경도(陞卿圖) 놀이를 했다. 종이 말판 위에서 누가 가장 먼저 높은 관직에 올라 퇴관(退官)하는가를 겨루는 놀이인 승경도 또는 종정도(從政圖) 놀이는 한해의 운수를 점치는 데 활용되기도 했다. 성종 때 성현이 쓴 <용재총화( 齋叢話)>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정승 하륜이 종정도(從政圖)를 만들어 9품부터 1품에 이르기까지 관직의 차례가 있어 윤목(輪木·둥글게 만든 나무) 육면에 덕(德)·재(才)·근(勤)·감(堪)·연(軟)·빈(貧)의 여섯자를 써서 ‘덕’과 ‘재’면 올라가고 ‘연’과 ‘빈’이면 그만두되 마치 벼슬길과 같았다.” 하륜이 종정도를 제작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한해의 운수를 보는 데 많이 활용하는 <토정비결(土亭秘訣)>은 조선 후기 세시 풍속 관련 기록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를 보면 <토정비결>은 조선시대에는 유행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친척이나 지인들을 만나면 ‘과거에 합격하시오’ ‘부디 승진하시오’ ‘아들을 낳으시오’ ‘재물을 많이 모으시오’ 하는 덕담을 주고받았는데 현대인의 덕담과도 별 차이가 없다. 그림을 주관하는 관청인 도화서(圖畵署)에서는 장수를 상징하는 신과 선녀 등의 그림을 그려 왕에게 올리고 서로 선물도 했으며, 이를 ‘세화(歲畵)’라 했다. 오늘날의 연하장과 비슷한 기능을 한 것이다. 부인들끼리는 잘 차린 어린 계집종을 ‘문안비(問安婢)’라 해 서로의 집에 보내 새해 문안을 드리게 했다. 동네마다 달과 호랑이 그림을 그려 액운이 물러가기를 빌었으며, 설날부터 보름까지는 무당이 신을 그린 깃발을 들고나와 잡귀를 물리치는 행사인 ‘나희(儺戱)’를 행했다.

설의 어원에는 ‘낯설다’라는 의미가 있는데, 한해의 시작은 모든 사람에게 낯선 한해로 들어가는 설렘을 안겨준다. 전통시대에도 한해를 맞이하는 다양한 풍속들이 행해졌으며, 상당수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설 풍속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새로운 희망과 기대를 크게 가져보는 한해가 됐으면 한다.
 



신병주는…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KBS <역사저널 그날> 진행 ▲KBS1 라디오 <신병주의 역사여행> 진행 중 ▲한국문화재재단 이사 ▲저서 <조선의 참모로 산다는 것> <조선의 왕으로 산다는 것> <조선 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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