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의료 불모지 농촌…‘시니어 의사’ 유입으로 답 찾아야”
입력 : 2025-04-17 15:32
수정 : 2025-04-18 05:00
[인터뷰] 병원장에서 계약직 공보의로…임경수 전북 정읍 고부보건지소장

서울아산병원 정년퇴직 앞두고 
정읍아산병원장 거쳐 보건지소로 

농촌주민, 의료 접근성 낮은 탓에 
병 알고도 방치…장애 발생률 높아 
건강관리 중요…계몽활동 펼쳐야 

젊은 의사 농촌 유입엔 제약 많아 
사학연금 지급·지역 정착 지원 등 
시니어 의사 유인책 마련이 현실적

의사 없는 농촌 보건소가 일상이 됐다. 농촌 의료가 붕괴하는 가운데 마지막 보루였던 공중보건의(공보의) 수급마저 공백이 커지면서다.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에 공보의 기피 현상까지 겹치면서 올해 1학기 군 복무를 이유로 휴학한 의대생은 2074명에 달한다. 공보의 대신 현역 입대를 선택한 인원이 2023년 같은 기간(208명)보다 10배 가까이 급증한 셈이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은퇴 후 지금은 공보의로 시골의사의 길을 택한 임경수 전북 정읍 고부보건지소장을 만나 농촌 의료의 현주소와 그 대안을 짚는다.

 

“처방한 약은 아플 때만 드셔야 해요. 계속 드시면 콩팥에 무리가 갑니다. 어깨 통증을 줄일 운동 방법도 알려드릴게요. 우선 3개월만 저랑 함께 운동해보시죠.”

1일 오전 일찍 찾아간 고부보건지소. 비좁은 대기실은 진료를 기다리는 9명의 어르신 환자들로 부대꼈다. 임 지소장이 부임한 이후 일상이 된 풍경이다. 서울 최고 병원 출신의 명의가 왔다는 소문이 돌면서 고부면은 물론 인근 읍·면 주민들까지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다. 친절하고 정확한 진료에 종전보다 환자수는 90% 가까이 증가하고 처방 의약품 종류도 2배 가까이 늘었다고 관계자가 귀띔한다. 의료 불모지로 전락한 농촌에서 시니어 의사로 활약하고 있는 임 지소장의 생각을 들어봤다.

 

- 연고도 없는 정읍에 와 보건지소장으로 근무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정년퇴직을 앞두고, 정읍아산병원 병원장직을 제안받았다. 처음에는 2년 정도 머물다 다시 서울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주민들과 정이 너무 많이 들었다. 공기도, 자연도 좋은 정읍이 마음에 들었다. 남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자 (정읍)시장님이 특별 조례를 제정해, 이곳 보건지소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 직접 겪은 농촌 의료의 현실은 어떤가.

▶전국 장애인 발생률이 평균 5.1%인데, 전북은 7.5%, 정읍은 10%를 넘는다.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기 어려운 현실 탓이다. 고부면 인구 약 2600명 중 65세 이상 고령층이 절반을 넘는다. 대부분 70∼80대로 운전을 할 수 없는 분들이다. 버스는 한두시간에 한대 꼴로 다니고 택시를 한번 타려면 3만∼4만원은 족히 든다. 병이 있는 걸 알고도 방치하는 분이 많다.

장애 발생 원인으론 외상·사고를 제외하면 뇌·심혈관계 질환이 많다. 고혈압·당뇨·고지혈증·비만·흡연 다섯가지 요소가 뇌·심혈관계 질환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현재 마을 이장님 등을 대상으로 다섯가지 건강 위험요인을 관리하도록 이른바 ‘건강 계몽활동’을 펼치고 있다.

 

- 공보의가 계속 줄고 있다. 의료 인력을 확보할 방안이 있다면.

▶현실적으로 젊은 의사들이 농촌으로 오기에는 제약이 많다. 농촌은 생활 인프라부터 교육·문화·의료 시설까지 모두 열악하다. 병원을 개원하려면 장비만 몇억원이 든다. 편하고, 수익 좋은 곳에 개업하고 싶은 마음이 인지상정 아니겠나. 젊은 의사들에게 희생만을 강요하긴 어렵다. 완전하진 않겠지만, 시니어 의사 확대에 해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읍아산병원장으로 근무할 때 시니어 의사들과 자주 모임을 가졌다. 10명 중 6명은 농촌에서 인술을 베푸는 노년의 삶에 관심을 보였다.

 

- 시니어 의사들이 농촌에 정착하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나.

▶가장 큰 걸림돌은 사학연금이다. 33년간 근무한 대학병원을 퇴직하면서 사학연금으로 한달에 약 45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 보건지소장으로 오면서 월 300만원 수준의 임금 계약을 했다. 공무원 신분으로 전환되니 잘 나오던 연금이 뚝 끊겼다. 놀면 450만원, 일하면 300만원을 받는 셈이다. 더 많은 시니어 의사들이 농촌으로 향할 수 있도록 ‘사학연금법’ 개정이 꼭 필요하다.

단기간 내 법 개정이 어렵다면 공무원이 아닌 신분으로 보건지소에 근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지금 공무원 월급을 받고 있는데 매달 실수령액에서 기여금 명목으로 56만9000원이나 공제돼 어려움을 느낀다. 기여금은 퇴직급여 재원으로 나중에 환급된다고는 하지만, 노후에 중요한 현금 유동성을 제한한다는 문제가 있다. 현재 급여로는 가족이 있는 서울과 정읍의 두집 살림을 꾸려가기 버거워 노후 대비책으로 운용했던 개인형퇴직연금(IRP)마저 해지했다. 연 8∼10% 수익을 내던 IRP는 해지하고, 수익률이 낮은 기여금을 노후 대비 목적으로 납입하는 모순된 상황이다.

 

- 추가적인 유인책이 있다면.

▶지금 16.5㎡(5평)짜리 옥탑방에 살고 있는데, 시설이 다소 낙후됐다. 가끔 찾아오는 가족들과 함께 머물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필요하다. 또 귀촌을 꿈꾸는 의사들 대부분 소소한 전원생활을 원한다. 33㎡(10평) 규모의 텃밭이라도 제공되면 만족도가 높을 것 같다.

중장기적으로 시니어 의사의 지역 정착을 촉진할 커뮤니티를 조성하는 것도 대안이다. 귀촌하려고 해도 지역주민과의 마찰을 두려워하는 의사가 적지 않다. 먼저 정착한 의사들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만들면 더 많은 시니어 의사들이 동참할 수 있지 않겠나.

 

- 농촌은 응급의료기관 등 필수의료가 붕괴되고 있다는 문제도 있다.

▶현실적으로 모든 지역에 응급센터를 세우긴 어렵다. 현시점에서 최적의 방법은 1차 의료를 강화하고,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몽활동을 펼쳐야 한다. 닥터헬기도 마련돼 있으니 우선 (비상상황을) 빠르게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 보건지소에 시니어 의사들을 확보하면 조기 인지가 수월해지리라고 본다. 동시에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계몽활동도 함께해야 한다. 고혈압·당뇨 관리만 잘해도 장애 발생률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 앞으로의 목표는.

▶가장 큰 바람은 정읍의 장애인 발생률을 전북 평균 수준까지 낮추는 것이다. 또 다른 꿈은 동료 의사들이 전국 보건지소에서 함께 일하는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옥탑방 근처에 게스트하우스 등을 만들어 귀촌에 관심 있는 의사들이 정읍에 와 함께 진료도 보고, 주민들과 교류하면서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 임경수 지소장은 …

대한응급의학회 창립멤버이자 국내 ‘응급의료법’ 제정의 기반을 닦은 의료계의 거목이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해 1986년 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1989년 연세대 원주의과대학에 응급의학과를 신설하고, 이후 서울아산병원에 재직하며 응급의학과 교수로 33년간 몸담았다. 전북 정읍과 연을 맺은 건 2022년 1월 서울아산병원 은퇴 후 정읍아산병원장으로 부임하면서다.

● 시니어 의사

퇴직했거나 퇴직 예정인 60세 이상의 전문의로, 10년 이상 대학병원 또는 종합병원급 수련병원에서 근무했거나 20년 이상 임상경력이 있는 의사를 말한다. 보건복지부는 지역 필수의료 공백을 해소하고자 지방의료원, 국립대병원, 지역 보건소·보건지소와 연계해 시니어 의사를 채용한 기관에 인건비 일부를 지원하는 ‘시니어 의사 활용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정읍=김소진, 사진=이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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