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점동물원] 애처로운 마음은 접어두세요, 우린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입력 : 2025-04-06 08:00
수정 : 2025-04-06 17:15
국내 1호 거점동물원 ‘청주동물원’ 

외래종 줄이고 보호·치료·연구에 집중 
반달가슴곰·수달 등 좁은 철장서 구조 
자연의 일부로 살 수 있는 환경 만들어 

관람객 “야생 활동 구경하기 힘들지만 
동물들 삶 존중하는 마음으로 기다려”

동물원을 찾는 이들의 마음속엔 설렘과 기대, 그리고 애처로움과 불편함이 공존한다. 신기한 동물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다는 기쁨과 비좁은 곳에 갇혀 사는 동물에 대한 비애다. 편안한 마음으로 둘러볼 수 있는 동물원은 없을까? 그래서 떠났다. 동물을 위한 동물원으로 불리는 충북 청주동물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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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동물원에 사는 수달

보이는 건 우거진 수풀과 바위, 그리고 호수뿐. ‘수달사’라는 팻말을 보지 않으면 누가 사는지 알 길이 없다. 이리저리 찾아봐도 수달의 행방이 묘연했다. 한참을 기다리다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 수달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물에서 나오자마자 곧바로 몸에 묻은 물기를 털어냈다. 그제야 여기저기서 “귀엽다”는 탄성이 터졌다.

차화순 청주동물원 생태해설사는 “야행성인 수달은 오후가 돼야 활동을 시작한다”면서 “이곳에선 일과 중 행동을 특별히 통제하지 않기 때문에 동물을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바위와 나무 뒤로 아스라이 보이는 늑대도 마찬가지였다. 방사장이 널찍한 탓에 한눈에 동물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과장을 좀 보태면 숨바꼭질 놀이가 꼭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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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동물원에 사는 미어캣

청주동물원은 한때 85종 516마리가 있었으나 현재 65종 285마리로 절반 가까이 규모를 줄였다. 우리나라 기후에서 살기 부적합한 코끼리나 기린 같은 외래종은 자연 감소시키고, 야생동물을 구조해 치료한 뒤 자연으로 돌려보내거나 생활하기 더 좋은 곳으로 보내면서 생긴 변화다.

그 덕분에 하나의 종, 하나의 개체가 차지하는 활동면적이 넓어졌다. 현재 6마리가 사는 ‘늑대사’는 2022년까지 초식동물 5종이 살던 곳을 개조해 마련했다. 여러 개의 굴을 만들고 오를 수 있는 커다란 소나무를 두는 등 늑대 본연의 모습 그대로 살 수 있도록 설계했다. 확장이 어려운 구조에선 통로를 이동해 공간을 넓게 쓰도록 했다. 스라소니가 머무는 방사장이 이런 형태다. 스라소니는 떨어져 있는 두 공간을 공중에 있는 터널을 이용해 자유로이 오간다.

김정호 진료사육팀장은 “훈련을 통해 자연으로 내보내기도 하지만 자연방사가 불가능한 토종·멸종위기 동물은 계속 보호하고 있다”면서 “이곳은 아픔을 지닌 동물의 보호소이자 치료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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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동물원에 사는 반달가슴곰

그 때문에 사연 있는 동물이 많다. 반달가슴곰 ‘반이’ ‘달이’ ‘들이’는 7년 전 웅담 채취용으로 좁은 철장에 갇혀 살다가 구조돼 청주동물원으로 왔다.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수달은 33㎡(10평) 남짓한 좁은 수달사에서만 지내다가 4년 전 이곳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다리를 절던 미니말은 2년 전 이곳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걸음걸이가 많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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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동물원에 사는 사자

인기 스타 ‘바람이’도 빼놓을 수 없다.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비쩍 말라 ‘갈비 사자’로 불렸던 이 수사자는 한 실내동물원의 가로 14m, 세로 6m의 좁은 콘크리트 방에서 7년을 살다가 구조돼 2년 전 이곳으로 왔다. ‘더 좋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바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올해 21살, 사람으로 치면 100살이 넘는 고령이지만 건강을 많이 회복한 모습이었다. 야생에서 18시간 이상 누워 있는 사자는 쉽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 작은 움직임만 보여도 관람객의 반응이 뜨겁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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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동물원에 사는 미니말. 이곳에선 동물이 스스로 방사장에서 나와야 모습을 볼 수 있다. 백승철 프리랜서 기자

이런 노력들 덕분에 청주동물원은 지난해 환경부로부터 국내 제1호 거점동물원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거점동물원으로 지정되면 사육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홍보, 동물 질병과 안전 관리, 종 보전·증식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김 팀장은 “과거엔 동물원이라고 하면 그저 동물을 구경하는 곳이었으나 청주동물원은 교육과 종 보전, 연구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서 “관람객을 위한 전시는 후순위에 속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정하민씨(20·청주시 상당구)는 “동물을 좋아하지만, 동물이 괴로워하는 공간은 싫어서 동물원이 불편할 때도 있었다”면서 “이곳에선 동물들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생활하는 것 같아 재미있게 관람했다”고 전했다.

동물을 찾기 힘든 동물원을 거닐다 보면 동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자연의 일부라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마음껏 보지 못해 아쉬울지언정 야생에서 살아야 할 동물이 갇혀 있다는 안타까운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저 동물과 자연에 가까워지고 싶다는 바람으로 차분히 기다려본다. 운이 좋으면 ‘바람이’ 얼굴이라도 한번 더 볼 수 있을지. 

청주=함규원 기자 on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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