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그곳에서] 잠에서 깨어나보니 꽃사슴 노니네…인천 굴업도 | 전원생활
자연 그대로의 모습 간직한 백패킹의 성지
이 기사는 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월간 ‘전원생활’ 4월호 기사입니다.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굴업도는 태초의 모습을 고이 간직한다. 지난해 말, 환승 없이 굴업도로 가는 배편이 취항하면서 접근성이 좋아졌다. 자연과 하나 되기 좋은 계절, 인천 옹진군 덕적면에 있는 굴업도로 1박 2일 백패킹을 떠나본다.
굴업도는 가식과 기교가 없다. 중생대 백악기 때 화산활동과 지진을 통해 형성돼 화산암괴 등 특이한 해안지형이 그대로 남아 있다. 동백나무·소사나무·이팝나무 등 남방계 식물과 북방계 식물이 동시에 나타나는 독특한 식생도 있다. 그래서 굴업도는 한국 내셔널트러스트에서 ‘꼭 지켜야 할 자연유산’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가식과 기교 없이도 굴업도는 충분히 아름답다.
굴업도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백패킹이 필수인데, 대표 박지인 ‘개머리언덕’에 가면 신비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언덕 위로는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가 번갈아 찾아든다. 흔들리는 수크령 사이사이를 걷다 마주친 꽃사슴은 마음에 울림을 남긴다. 최근 굴업도의 신비한 풍경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굴업도는 제주 비양도, 강원 평창 선자령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백패킹 성지로 자리 잡았다.
굴업도를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은데 고민이 됐다. 순백의 자연이 있다는 건, 인간의 발길이 쉽게 닿을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굴업도는 3대 백패킹 성지 중에서도 난이도가 가장 높은 걸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백패커들 사이에서도 평생 꿈의 성지로 남는 경우가 많다. 기사를 위해 이 한 몸 희생할 것이냐, 개인의 안위를 지켜낼 것이냐. 혼자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을 때, 백패킹 마니아인 <전원생활> 신시내 기자가 동행해주기로 약속한다.
해누리호에 몸을 싣고 굴업도로
오전 8시 30분.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한다. 오늘 여행에 함께할 이들은 총 세 명. 신 기자, 신 기자 남편인 20년 차 백패킹 마니아 이진우 씨, 사진 기자다. 개머리언덕은 세속의 삶을 허용하지 않는다. 화기 사용이 금지돼 있고, 화장실이나 편의시설도 없다. 그러니 욕심을 버리고 최소한의 짐만 챙기는 게 현명하다. 텐트, 침낭, 물, 전투식량, 장갑, 헤드 랜턴, 약간의 간식, 매트, 생리현상 해결을 위한 삽 등만 챙겨도 배낭 무게가 10㎏이 훌쩍 넘는다.
과거 굴업도는 접근성이 낮은 섬이었다. 인천항에서 70㎞ 떨어진 덕적도까지 간 후 그곳에서 굴업도 가는 배로 환승해야 했으며, 가는 데만도 반나절이 걸렸다. 지난해 11월, 환승 없이 굴업도로 가는 해누리호가 신규 취항한 덕에 그나마 접근성이 높아졌다.
‘굴업도에 들어갈 땐 홀숫날, 나올 때는 짝숫날’이라는 말이 있다.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한 해누리호는 총 5개의 섬(굴업도·백아도·울도·지도·문갑도)에 들르는데, 굴업도가 홀숫날에는 첫 기항지고 짝숫날에는 마지막 기항지인지라, 홀숫날 1시간 더 일찍 굴업도에 도착한다. 홀숫날에는 해누리호가 인천~굴업도를 잇는 ‘직항편’이 되는 셈이다.
해누리호에 탑승한다. <전원생활> 팀을 제외하곤 백패커는 단 한 명뿐. 이때는 알지 못했다. 이게 고생의 시작이 될 줄은. 오후 12시. 선창 밖으로 길쭉한 모양의 굴업도가 보인다. 면적 52만 평(1.7㎢)인 작은 섬 굴업도는 그 모양새가 마치 몸을 웅크리고 땅을 파며 일하는 사람의 모습처럼 보인다고 해, ‘팔 굴(掘)’에 ‘일 업(業)’ 자를 써서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온다.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 마중 나와 있는 것만큼 기쁜 일이 또 있을까. 굴업도 주민들은 해누리호 입항 시간이 되면 1t짜리 트럭을 몰고 선착장에 나온다. 그러곤 내 손님 네 손님 할 것 없이 백패커를 마을까지 태워다준다. 오랜만의 인심이 낯설지만 기쁘다.
드넓은 언덕, 푸른 바다 그리고 꽃사슴
마을에 도착한다. 굴업도의 유일한 마을인 ‘큰마을’은 백패킹의 마지막 채비를 점검할 수 있는 곳이다. 슈퍼에서 물 1ℓ를 추가로 구매하고, 현대적 시설인 화장실을 마지막으로 누린 후, 마을 앞에 형성된 ‘굴업해변’으로 나간다. 해변의 모래가 너무 고와 발이 푹푹 빠진다. 해변의 끝에 다다르면, 개머리언덕으로 향하는 시작점인 철문이 나온다. 옆에 서 있는 경고문이 눈에 띈다.
굴업도는 과거만 해도 투쟁의 이미지가 강했다. 1994년, 정부가 굴업도에 핵폐기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한다. 주민의 수가 적어 반대 목소리가 작을 걸로 예상했지만, 인천 시민들의 완강한 반대와 굴업도 아래로 지진대가 지나간다는 사실이 추가로 알려지며 핵폐기장 설치는 무산됐다. 이후 대기업 CJ가 굴업도의 땅 98%를 사들여 골프장과 리조트를 짓는다고 발표했다가, 환경단체의 반대로 무산된 일도 있다. 경고문은 2016년 개머리언덕에서 한 백패커의 부주의로 큰 화재가 난 후 세워진 것이다.
소사나무 군락지가 빼곡한 돌산을 10여 분 오르면, 개머리언덕이 나온다. 민둥민둥한 언덕 뒤로 광활한 바다가 펼쳐진다. 인간의 흔적이라곤 능선을 따라 난 좁은 길이 다이다. ‘한국의 갈라파고스 섬’이라는 명성답게, 운이 좋다면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인 왕은점표범나비, 애기뿔소똥구리, 천연기념물인 매도 눈에 담을 수 있다.
텐트 칠 자리를 찾는데 쉽지 않다. 다른 백패커들을 따라 가 적당히 옆에 텐트를 치면 된다고 들은 터다. 그런데 배에서 봤던 유일한 백패커는 보이지 않고, 어딜 둘러봐도 모습이 비슷해 제대로 된 박지가 어디인지 판단이 안 선다. 텐트를 친 흔적이 있는 곳에 여장을 푼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텐트가 우그러졌다.
그 속에서 웅크린 채 ‘과연 이게 맞는 것인가’라는 자괴감이 들 때, 밖이 소란스럽다. 동료의 텐트 폴이 톡 하고 부러져 바람에 날아가기 직전이었다. 이대론 백패킹이 불가능했다. 하는 수 없이 마을에 돌아가기로 했을 때, 우리가 잘못된 박지에 텐트를 쳤다는 걸 깨달았다. 바람이 덜 불고 땅이 평평한 박지가 섬 끄트머리에 있었다.
긴장한 채 텐트를 철수해서인지 다들 힘이 빠졌다. 그때 우연히 꽃사슴 무리를 마주한다. 지고 있는 해에 비친 그들의 눈망울이 반짝하며 빛난다. 한때 주민들이 키우다 방목한 꽃사슴들이다. 현재는 야생화돼 200여 마리에 이른다. 텐트가 바람에 날려도, 전투식량으로 끼니를 때워도, 야생에서 생리 현상을 해결해야 해도 자연의 신비함을 만날 수 있다면야,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늦은 밤, 텐트에 누우니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가 귀에 번갈아 드나든다. 그 소리가 좋아 자다 깨다 한다.
섬에서 난 재료로 만든 밥상으로 마무리
다음 날 오전 10시, 여장을 다시 꾸리고 섬 반대편으로 향한다. 사막 같은 ‘목기미해변’과 화산암 형상이 코끼리와 닮아 ‘코끼리바위’라 불리는 랜드마크도 둘러본다. 민박집에서 푸짐한 백반 한 상을 먹는 것으로 여행을 마무리 하기로 하고, 솜씨 좋기로 유명한 ‘굴업민박’으로 향한다.
주인장 서인수·최인숙 씨 부부는 “직접 거둔 해물과 직접 기른 채소를 재료로 삼는다”고 말했다. 메뉴와 반찬은 매일 조금씩 달라지나 맛은 일품이다. 오늘은 된장을 풀어 구수한 맛을 낸 꽃게탕이 나왔다.
서씨가 옆에서 말한다. “나는 완도가 고향인데 아내를 만나고 귀어했어” “요즘엔 꽃사슴들이 민가로 내려와서 밭을 헤집어놔 사냥하려고 개를 키워. 지난해에만 세 마리를 잡았어” “배 시간이 다 됐으니 이제 가.” 신비한 자연, 후한 인심, 섬 사람들만의 소소한 이야기가 깃든 굴업도이다.
글 윤혜준 기자 | 사진 전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