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갈림길서 이웃부터 챙긴 ‘산불 영웅들’
입력 : 2025-04-03 16:25
수정 : 2025-04-04 05:00
‘지역 사수’…48시간 고군분투 
감사편지 받고 위로와 보람 느껴 

주민들 일일이 찾아가 상황 대비 
농기구 전소 우려 논밭으로 옮겨 

10㎏ 호스 들고 산불속으로 
차에서 쪽잠자고 다시 진화 ‘투혼’

역대 최악의 산불 현장에서 이웃과 마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작은 영웅들의 헌신적인 활약상이 감동을 주고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정작 자신의 집과 농업시설이 불타고 있는데도 이웃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 묵직한 울림을 주고 있다.

역대 최악의 산불 현장에서 이웃과 마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작은 영웅들. 오성재 경북 의성군 단촌전담의용소방대장

오성재 경북 의성군 단촌전담의용소방대장(63)은 3월22일 의성에서 산불이 최초 발생한 이후 지역을 사수하기 위해 48시간 동안 사투를 벌였다. 불티가 강풍을 타고 비화하면서 지역 곳곳에 발생한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동안 정작 자신의 9917㎡(3000평) 규모 연동하우스는 완전히 타버렸다.

그는 “당시엔 이웃들의 안전이 우선이었다”면서 “대원 중 한명은 자택이 전소되는 상황에서도 산불 진화에 나서줘 정말 감사하고 미안했다”며 되레 위로했다.

오 대장은 “자율방범대와 청년부 등 지역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농업용 방제차량과 분무기를 동원해 현장에서 큰 도움을 줬다”면서 “수많은 영웅이 힘을 모아 피해를 최소화한 것”이라고 복기했다.

그는 “최근 한 초등학생이 건강음료 한병과 손편지를 건네주며 감사 인사를 전할 때 위로와 보람을 느꼈다”면서 “이제 불탄 비닐하우스를 다시 짓고 재기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류용하 단촌면 장림리 이장

류용하 단촌면 장림리 이장(68)은 인근 안평면에서 산불이 시작됐던 3월22일부터 마을주민들에게 긴급 대피를 준비시켰다. 불이 확산되면 재빨리 대피해야 한다고 40여차례 방송한 뒤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 위기 상황에 대비하도록 도왔다. 농기구가 탈 것을 우려해 산과 떨어진 평지 논밭으로 옮겨놓도록 권고했다.

류 이장은 “귀중품은 미리 쌓아놓고, 급할 때 바로 몸만 피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3월25일 초속 27m 북서풍을 타고 산불이 순식간에 번지기 시작하자 류 이장은 마을주민들과 함께 신속하게 대피했다. 마을 전체 85가구 중 16채가 전소됐지만,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농기계도 모두 무사했다.

산불재난특수진화대(이하 진화대)의 역할도 컸다. 이들은 소방헬기가 1차적으로 불길을 잡으면 진화차에서 10㎏이 나가는 호스를 꺼내 들고 직접 산속에 들어가 남은 불을 진화했다.

서민석 산림청 경남 양산국유림관리소 보호팀 주무관

진화대로 활동하는 서민석 산림청 경남 양산국유림관리소 보호팀 주무관(57)은 “진화대로서 10년차 근무했지만 이번 산불 진압은 쉽지 않았다”면서 “주변에 연기가 가득 차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사전에 철저히 대피로 등을 설정하고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큰 고비를 넘긴 순간도 있었다. 3월25일 울산 울주군 온양읍 운화리 대운산 2봉에 잔불을 정리하러 들어간 상황에서 급작스레 바람이 불어 불길이 되살아났던 것이다. 화마에 둘러싸이기 직전 대원들과 전력 질주해 현장에서 빠져나왔다는 그는 “막상 진화할 당시에는 집중하느라 두렵다거나 겁이 나진 않았다”면서 “그런데 위험을 넘기고 나니 다리가 탁 풀리더라”고 웃었다.

급박할 땐 차 안에서 2∼3시간 쪽잠을 자며 버티면서도 끝끝내 나섰던 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그걸 해냈을 때 오는 뿌듯함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서 주무관은 한마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사람들이 담뱃불은 꼭 끄고, 영농폐기물은 반드시 파쇄해서 처리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저희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좀더 안전한 일상을 보낼 수 있을 테니까요.”

의성=유건연, 양산=이선호 기자 sower@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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