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변화 시장을 준비한다] 영국 왕족이 마시던 로열밀크, ‘저지우유’ | 월간축산
유가공품 위주의 소비 변화 대응한 프리미엄 제품
이 기사는 성공 축산으로 이끄는 경영 전문지 ‘월간축산’ 4월호 기사입니다.
흰 우유 소비가 점차 감소하는 반면 저렴한 외국산 멸균우유 소비는 증가하고 있다. 국내 유업계는 이러한 위기를 돌파하고자 프리미엄 라인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그중 새로운 젖소 품종인 <저지>종에서 생산된 우유가 등장하며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 젖소라 하면 얼룩소인 <홀스타인>종을 흔히 떠올릴 것이다. 반면 <저지>종은 기본 털색이 갈색인 젖소 품종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품종이지만 영국·호주 등 낙농 선진국에서는 대표적인 젖소 품종 중 하나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사육되고 있다. <저지>종은 영국 왕실 전용 우유를 만들기 위해 개량한 품종으로 영국 해협의 저지섬에서 기원했다. 왕실 전용 우유란 이미지 때문에 ‘로열밀크’로 불리기도 한다.
국내 젖소는 얼룩무늬인 <홀스타인>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홀스타인>은 우유 생산량이 많으나 유지방·유단백 함량이 적어 치즈·버터 등 유가공품 생산에는 적합하지 않다. 반면 <저지>종은 <홀스타인>종에 비해 체구가 작아 우유 생산량은 적지만 유지방·유단백 함량이 높아 유가공품 생산에 유리하다. 실제로 그 맛과 품질도 뛰어나다. <저지>종은 체격이 작은 만큼 사료 섭취량이 적어 경제적이다. 분뇨와 메탄가스를 적게 배출해 친환경적이기까지 하다. 또한 더위에도 강해 기후변화가 심한 곳에서도 사육하기에 적합하다.
고부가가치 유가공품 제조에 활용
<저지> 젖소가 생산하는 ‘저지우유’는 A2 베타카제인의 유전자 보유 비율이 높아 기능성 유제품 생산에도 활용할 수 있다. A2 베타카제인은 일반 우유에 함유된 A1 베타카제인에 비해 소화효소에 의한 단백질 엉김이 덜해 소화와 흡수율이 뛰어나다. 편하게 소화되는 특징을 지녀 소화기관이 약한 어린이나 노인도 부담 없이 섭취할 수 있다.
맛이 깊고 진한 저지우유는 낙농 선진국에서 고부가가치 유가공품 제조·판매에 활용되고 있다. 이를 활용한 6차 산업도 활성화된 편이다. 특히 일본은 저지우유를 목장형 유가공 형태로 브랜드화해 우유·버터·아이스크림·푸딩 등 다양한 프리미엄 제품으로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최근 일본을 방문한 한국 관광객들 사이에서 꼭 맛봐야 할 ‘필수템’으로 ‘저지우유 푸딩’이 큰 인기를 얻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는 ‘저지우유 푸딩’을 일본에서 직접 들여와 판매하며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저지>종 도입으로 우유 생산구조 다양화
최근 국내에서도 우유 소비 패턴이 변화하면서 <저지>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정부와 유관기관에서도 <저지>종 도입·확산을 위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23년 새로운 품종인 <저지>종의 수정란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외국산 일변도인 국내 유가공품 시장에서 가공에 적합한 품종인 <저지>종을 도입함으로써 흰 우유 중심의 생산구조를 다양화해 낙농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홀스타인>종은 우유 생산량이 많으나 유지방·유단백 함량이 적어 유가공품 생산에는 적합하지 않은 특성이 있다. 과거에는 소비자들이 흰 우유 위주로 유제품을 소비해 <홀스타인>종의 특성이 문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유제품 소비 유형이 ‘마시는 우유’에서 ‘유가공품’ 중심으로 변해 가고 있다. 이에 따라 유제품 소비 증가분이 외국산으로 대체되면서 국산 우유 자급률은 하락하는 실정이다.
새로운 젖소 품종이 필요하지만 큰 비용이 소요되기에 민간만의 노력으로 추진이 어렵다. 2011년부터 당진낙농축협, 서울우유협동조합 등 민간에서 <저지>종 도입을 추진해 왔다. 농식품부는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국가 지원을 통해 <저지>종 사육 규모를 늘려갈 계획을 세웠다. 이를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2023년 <홀스타인>에 맞춰진 젖소의 종축 수입 기준도 보완했다.
2023년 경기도축산진흥센터는 <저지>종 확산을 위해 저지협의체 참여 농가를 대상으로 수정란이식을 시작했다. 2023년 12월에는 <저지> 수정란을 통해 송아지를 생산하기도 했다. 지난해 국립축산과학원은 전북 임실군에 <저지>종 수정란 총 30개와 <저지>종 젖소 생축 1마리를 보급했다. 축산과학원은 2027년까지 매년 수정란 30개, 생축 5마리를 임실군에 보급할 예정이다. 더불어 임실군 낙농업의 생산성과 품질을 높일 다양한 기술이전과 협력 연구를 이어갈 방침이다. 임실군 역시 <저지>종 젖소 사육 기반을 확립하고자 노력을 이어갈 계획이다.
고급 이미지 앞세워 제품 속속 출시
국내 유업체에서도 ‘고급’ ‘프리미엄’ 이미지를 앞세워 저지우유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서울우유는 2020년 일부 이커머스업체를 통해 저지우유를 선보인 바 있다. 이후 해당 제품을 리뉴얼해 2022년 프리미엄 우유인 <골든 저지밀크>를 출시했다. <골든 저지밀크>는 일반 우유 대비 높은 단백질과 칼슘을 함유하고 있으며 깊고 진한 풍미를 자랑한다. 한정 생산·판매되며 서울우유 공식몰, 전국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에서 구매할 수 있다. 서울우유는 저지우유의 프리미엄을 강조하기 위해 제품 패키지에도 신경 쓴 모습이다. 황금색으로 고급스러움을, 검은색 라벨로 최상위 등급을 나타내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서울우유의 저지우유 출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8년 서울우유 디저트 카페인 ‘밀크홀 1937’에서 국내 최초로 저지우유를 판매한 바 있다. ‘밀크홀 1937’은 서울우유가 창립 80주년을 맞아 2017년 론칭한 디저트 카페로 올해 초 마지막 점포가 문을 닫았다. 기존 카페와의 차별화에 실패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4월에는 제주특별자치도가 제주우유와 함께 <제주 저지 우유>를 출시했다. 이는 도가 탄소중립형 축산 환경 조성을 위한 젖소 품종교체 사업의 일환으로 제주우유와 함께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에서 <저지>종 젖소의 우유가 시판된 것은 처음이다. <제주 저지 우유>는 2024년 3월부터 마켓컬리에 입점해 판매하고 있다. 제주우유는 앞으로 요구르트·아이스크림·버터 등 신제품을 개발해 다양한 유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국내 유업체의 프리미엄 시장 진출은 국내 우유 소비 감소와 저렴한 멸균우유 수입 증가에 따른 대응으로 보인다. 저지우유뿐 아니라 A2우유·락토프리우유 등의 잇따른 출시 또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배앓이 등 각종 이유로 우유 마시기를 꺼렸던 이들을 신규 고객으로 유입시켜 전체 우유 소비를 늘리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주요 유업체의 프리미엄 우유 출시 가속화로 흰 우유 시장이 고급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글·사진 최민지 | 사진제공 국립축산과학원, 제주특별자치도, 경기도축산진흥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