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래의 마을·땅·집] (28) 시골살이, 시간이 답이다 농사 정보 얻을땐 모임 참석 도움돼
어제 마을 어르신 둘이 싸우는 걸 봤는데, 오늘 아무렇지 않게 마주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수다를 떨고 있다. 그들의 싸움엔 경계가 없다. 이리 밀렸다 저리 밀렸다, 고무줄 같다. 누구의 잘잘못도 따지기 힘들다. 그냥 기분 나쁘고 자존심이 상하면 언성이 높아진다. 평소에 상했던 감정이 엉뚱한 걸로 폭발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한방’은 없다. 있어도 꺼내지 않는다. 그것만은 가슴에 묻어놓는다. 결정적인 한방을 날리는 순간 결딴난다. 서로 이웃으로 살기 힘들어진다. 평생 살아온 마을을 떠날 수는 없다. 매일 얼굴 봐야 하는데 등지고 살게 될 수 있다. 못 본 척 못 들은 척, 어울렁 더울렁 어울려 산다.
도시에서 온 사람들은 다르다. 싸움이 붙으면 시시비비를 가려 결론을 내고 끝장을 봐야 한다. 적당히 눈 감고 못 들은 척하지 못한다. 조금 손해 보면 될 일도 따지다보면 풀어지지 않고 점점 꼬인다. 말로 안되니 법대로 한다. 싸우면 누군가 하나는 생채기 나고 꼴 보기 싫어 떠나야 한다.
다툼은 너무 친하게 지내려다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귀촌할 때 많이 듣는 얘기 중 하나가 이웃과 잘 어울려 살라는 것이다. 잘 어울리라는 것을 아무하고나 친하게 지내라는 말로 오해한다. 무조건 친하게 지내려 한다. 얼굴도 자주 보고, 크고 작은 행사도 꼬박꼬박 챙기고, 일에도 앞장서 나선다. 물론 성격이나 체질적으로 잘 맞는 사람도 있지만 다 그렇지 않다.
귀촌해 살러 온 사람들 성향이 자연을 좋아하고 이웃과 잘 어울리는 편안한 성격일 것이라 여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자연에서 자기 식대로 살고 싶은 사람들이 전원생활을 한다. 아무하고나 어울리는 것이 체질적으로 잘 맞지도, 되지도 않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사람이 이웃과 잘 지내보려고 억지로 뭘 하면 스텝이 꼬인다.
마을에 살러 오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어설프다. 주변 정보도 얻어야 하고 심심하기도 해 이 사람 저 사람 만나 형님 동생 하며 모임도 만든다. 꾸준히 잘 지내기도 하지만 얼마 안돼 지지고 볶고 다투다 끝나는 경우도 많다. 이웃으로 살며 다툼이 생기면 불편하다. 결국 이삿짐을 싼다.
시골살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조급하면 진다. 시간이 가면 주변 사람들 성향도 파악되고 자연스럽게 친해진다. 갑자기 너무 많이 너무 깊게 알고 스스럼없어지면 오히려 불편한 이웃을 만난다. 생활도 불편해진다.
농사를 짓는 것도 마당을 가꾸고 집을 짓는 것도 똑같다. 급하게 무엇인가 의도적으로 하려 들면 결과가 좋지 않다. 잘못한 것들을 뜯어고치고 수정하다보면 엉망진창이 된다.
물론 의도적으로 조급해할 필요도 있다. 귀농해 농사를 짓는 사람이라면 농사 정보도 얻고 농사법도 배워야 한다. 품앗이가 필요할 때도 있다. 이럴 때는 모임에 끼어 사람들을 만나 어울려야 한다.
마을공동체 의식은 좋은 풍습이며 간직하고 보존해야 할 가치다. 하지만 귀농·귀촌인들에게는 이것이 넘어야 할 담이 되는 경우도 많다.
내가 평소 도덕적이고 경우 있게 상식선에서 살고 있다면, 내가 속해야 하는 마을공동체나 이웃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눈치 볼 것도 없이 내 식대로 열심히 사는 것이 답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친한 이웃도, 경계할 사람도 생긴다. 시간이 약이다.
김경래 OK시골 대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