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향과 재배 자신”…강원 최북단의 낯선 풍경
입력 : 2024-11-06 20:03
수정 : 2024-11-08 05:00
강원지역, 열대작물 농가 가보니 
10농가 키워…직거래·가공판매 
키위·망고·바나나 면적도 늘어 
판로처·생산기술 부족 등 부담 
철저한 사전 조사 후 도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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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양양군 서면에서 백향과(패션프루트)를 재배하는 김형익·이복실 부부가 수확을 마친 패션프루트의 잎과 가지를 정리하고 있다.

“추운데 괜찮냐고요? 최근엔 오히려 날씨가 너무 더워져서 문제죠. 이제 남쪽보다 우리 지역에서 아열대작물이 더 잘 자랄 수도 있어요.”

강원에서 백향과(패션프루트)와 키위·망고·바나나 등 아열대작물을 생산하는 농가가 점차 늘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라 평균기온이 상승하면서 아열대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한계선이 최근 국토 최북단까지 빠르게 북상한 모습이다.

1일 찾은 강원 양양의 한 농가. 이곳에선 패션프루트의 잎과 가지를 정리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여름철 한차례 수확을 마친 뒤 겨울을 나기 전 그동안 무성하게 자란 가지를 걷어내는 일이다. 감농사를 짓던 이복실·김형익씨 부부가 3년 전 재배를 시작한 패션프루트는 이제 전업으로 재배하면서도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소득작물로 자리 잡았다. 165㎡(50평) 하우스 3개동으로 크진 않지만, 청 가공과 직거래로 유통하는 물량이 늘면서 앞으로 하우스시설을 보다 더 확대할 계획이다.

아열대작물 재배는 무엇보다 적정한 기온 관리가 관건이다. 특히 겨우내 나무가 고사하지 않으려면 연중 온난한 기온을 유지해야 하는데, 최근 지구온난화로 평균기온이 오르면서 국토 최북단에 가까운 양양에서도 이처럼 아열대작물을 재배하는 농가가 생겨나고 있다. 현재 10농가가 패션프루트를 재배 중이며, 패션프루트 한 작물만 키우는 전업농가도 3곳에 이른다.

김씨는 “보통 24∼26℃의 기온이 패션프루트 재배에 가장 적당하다고 보는데 우리 농원에선 겨울철 8~13℃ 수준으로 하우스 내 온도를 유지한다”며 “연료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온도를 크게 높일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4∼5월과 7∼8월 연중 두차례 수확이 가능하고 두번째 수확 때부터는 순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원 내 아열대작물 재배는 특히 동해 해안선을 따라 위치한 지역을 중심으로 늘고 있다. 양양보다 더 북쪽에 자리한 고성에선 키위가 새로운 소득작물로 뿌리내리고 있고, 강릉에선 망고와 바나나를 재배하는 농가도 등장했다. 고성군은 2020년부터 키위 재배를 시범사업으로 채택해 농가에 묘목·시설과 기술 교육을 지원해왔다. 그 결과 현재 7농가가 키위를 재배하고 면적 또한 2㏊ 수준까지 확대됐다.

2017년 고성에서 처음으로 키위농사를 시작한 홍연수씨는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지금은 고품질 키위를 안정적으로 생산 중”이라며 “학교급식과 로컬푸드매장, 소비자 직거래 등 다양한 경로로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추세에 따라 앞으로 강원권을 포함한 국내 아열대작물 재배면적은 점차 증가할 것으로 점쳐진다. 다만 전문가들은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기 전 꼼꼼한 사전 분석과 조사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무엇보다 아직 국내에선 낯선 품목인 아열대작물은 소비지 판로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거나 재배기술이 정립되지 않은 것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겨울철 가온을 위한 난방비 또한 농가에 여전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농촌진흥청이 2월 한달간 난방비 소요량을 분석해 아열대작물별 재배 적정지를 추정한 결과, 중온성을 띠는 아열대성 망고는 전남 해남지역 밑으로만 재배하는 것이 권장된다. 그보다 북단에서 재배할 경우 한달간 등유 소요량이 적정 기준인 1만1900ℓ(1000㎡) 기준을 초과해 난방에 과도한 비용이 들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패션프루트와 용과·파파야 등은 남부권은 물론 강원 영동지역까지 재배할 수 있는 곳으로 제시돼 지역별로 권장되는 아열대작물이 각기 다르게 나타났다.

김성철 농진청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연구관은 “초기엔 시장에 없던 희귀한 작물이란 이유로 다소 비싸게 팔리더라도 전체 물량이 늘어날수록 판로문제가 두드러지며 어려움을 겪는 농가가 증가할 수 있다”며 “기후변화는 물론 소비자 식문화의 변화로 아열대작물에도 기회가 생기는 건 맞지만 아직 시장규모가 크지 않다는 점에 유의하고 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양양·고성=이현진 기자 abc@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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