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크리에이터] 첨단 스타트업·대기업 둥지 트는 ‘제2판교’ 꿈꾸다
입력 : 2024-10-22 15:54
수정 : 2024-10-23 05:00
[로컬크리에이터] 팜앤디 서동선 대표 <전남 곡성> 
곡성 100일 살기 기획 ‘청춘작당’ 운영 
전체 참가자 90명 중 26% 정착 성과 
지역 빈 공간 활용 ‘러스틱타운’ 설계 
개발자·프리랜서 등에 업무공간 제공 
청년 인구 느는 ‘기업도시’ 성장 기대
전남 곡성의 서동선 팜앤디협동조합 대표가 러스틱타운 1호점 업무 공간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버려진 관광지였던 심청한옥마을을 개조해 기업 임직원이 머무르면서 일할 수 있는 워크빌리지로 만들었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전남 곡성은 9월 기준 등록 인구 2만6638명, 65세 이상 인구 1만721명으로 고령인구 비율이 40%를 넘는 심각한 소멸 위기 지역이다. 이런 곡성을 경기 성남에 있는 판교신도시처럼 첨단 기업으로 가득 채울 작정이라는 로컬크리에이터가 있다. 16일 곡성 심청한옥마을에서 서동선 팜앤디협동조합 대표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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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앤디협동조합 구성원들.

팜앤디협동조합은 2018년 서 대표와 대학 동기 3명이 모여 만든 조직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지역문제 해결에 도전하는 ‘로컬벤처’로 정의하고 지역인구를 늘리기 위해 워크빌리지 운영, 일자리 지원, 매거진 발행 등 각종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한다. 워크빌리지란 기업 임직원이 들어와 일하고 머무르는 기업마을을 의미한다. 특히 서 대표는 농업과 농촌 공동체에 관심이 많았다.

“호주에서 3년 반 정도 농업기술회사에서 일하다가 스물일곱살이 됐을 때 농촌 공동체를 현대적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귀농을 결심했어요. 1년 정도 준비를 거친 끝에 전남 인구 희망찾기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농촌 살아보기 프로젝트 ‘청춘작당’을 시작했죠.”

서 대표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군 예산을 일부 지원받아 곡성 100일 살기 프로그램인 ‘청춘작당’을 운영했다. 기수마다 청년 30명을 모집해 숙소와 차량, 생활비를 지원하고 온라인 지도 등록이나 디지털 교육 커리큘럼 제작 등 실제 지역 문제를 해결하도록 구성했다. 프로그램은 성공적이었다. 연도별 30명씩, 전체 90명 중에서 46명이 정착을 시도하고, 3년 이상 거주한 청년도 23명이나 돼 약 26%의 정착 비율을 보였다. 서 대표는 청춘작당에서 발생한 소비와 팀 임무로 만든 작업물, 정착 청년의 소득 등을 합쳐 약 11억원에 달하는 경제 효과를 낸 것으로 자체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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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틱타운 1호점 전경.

“다른 곳의 농촌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분석하면 평균 6%만 정착을 시도합니다. 저희는 지역과 청년이 끈끈한 관계를 맺고 하나의 고향처럼 느끼도록 설계했습니다. 그 결과 약 26%가 정착했지만 저희는 만족할 수 없었죠. 정착에 실패한 사례를 보니 일자리가 없어서 마음이 있어도 다시 돌아가는 사람이 많아 워크빌리지 ‘러스틱타운’을 설계했습니다.”

러스틱타운은 폐교나 침체된 관광지 등 지역의 빈 공간을 기업 업무 공간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다. 이를 통해 곡성에 상주하는 기업을 늘리고 디자이너나 개발자 같은 프리랜서들도 이용할 수 있는 업무 공간을 마련한다. 농촌살이 활동으로 유입된 청년을 정착시키려면 결국 일할 기업과 환경이 필요해서다.

서 대표는 지난해 사용하지 않고 있던 관광지 심청한옥마을을 재단장했다. 이용객은 며칠에서 몇달까지 원하는 기간 머물며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지금은 단기간 머물며 업무를 보는 워케이션(휴가지에서 원격으로 근무하는 것)이 중심이지만 2025년부터 스타트업(새싹기업)에 업무 공간을 제공하는 창업마을, 이후 대기업이 제2사옥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업마을로 확장할 계획이다. 내년 6월엔 폐교된 옛 삼기중학교 약 1만4000㎡(4만6000평) 부지에 2호점을 열어 임직원 40여명이 입주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서동천 곡성군 인구정책팀장은 “팜앤디협동조합은 청년 생활인구 유입과 기업마을 조성, 관계기업 형성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사례”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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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벽면은 만족스럽다는 후기로 가득하다. 러스틱타운은 업무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 덕분에 재방문률이 약 45%에 달한다. 사진=김원철 프리랜서 기자, 팜앤디협동조합

성과도 뛰어나다. 러스틱타운은 지난해에만 82개 기업에서 임직원 800여명이 이용했으며 재방문율은 43%에 달했다. 개인 워케이션 이용객까지 합치면 1000여명이 곡성을 방문했다. 다른 워케이션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기업 내부 인터넷망을 연결해도 보안이 잘 이뤄지는 등 기업 측에도 장점이 많다. 참가자들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업무 생산성이 높아지는 경험을 했다고 입을 모은다. 러스틱타운을 찾은 박정아 인천시사회복지사협회 사무처장은 “도시의 사무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풍경과 자연 속에서 일하는 경험이 굉장히 흥미롭다”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것 같아 기대된다”고 소감을 전했다.

서 대표는 곡성이 앞으로 기업마을을 넘어서 기업도시로 발전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처음 곡성 내 기업을 조사했을 때 106곳 중에서 청년들이 선호할 만한 곳은 단 2곳뿐이었어요. 하지만 러스틱타운을 운영하면서 곡성이 판교 같은 기업도시가 될 수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첨단 스타트업·대기업이 둥지를 튼 곡성을 기대해주세요.”

곡성=정성환 기자 sss@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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