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위 특성·계절적 요인 등 영향 소분할 작업 전까진 확인 못해 비계 제거땐 가격 인상 불가피 품질관리 매뉴얼 혼란 부추겨 “등급제 손봐 새 기준 마련 필요”
최근 돼지고기 가격이 생산비 밑으로 하락해 생산자단체가 정부에 대책을 촉구하고 소비촉진 자구책을 마련하는 등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이같은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다. 바로 ‘과지방 삼겹살 논란’이다.
자칫 양돈업 전반으로 불신이 이어져 소비 위축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 내부에서 나온다. 양돈업 전반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과지방 삼겹살 논란’ 또다시 재발=과지방 삼겹살 논란은 1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삼겹살데이(3월3일) 행사 과정에서 일부 가공업체가 지방 함량이 높은 삼겹살을 유통하며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당시 온라인상에서 소비자 불만이 이어지자 농림축산식품부는 생산자단체·가공업체 등과 품질관리 협약을 맺고 축산물품질평가원을 통해 ‘삼겹살 품질관리 매뉴얼’을 내놓으며 업계 계도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논란이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지난해 12월 한 지방자치단체가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으로 지방 함량이 높은 삼겹살을 보낸 사실이 드러나며 재점화했다. 이후 올 1월에도 식자재마트 등에서 과지방 삼겹살을 판매한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며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농식품부는 1월30일 소명자료를 내고 “식자재마트·영세업체를 포함한 가공·유통 업체에 삼겹살 품질관리와 실태점검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면서 수습에 나섰다.
대한한돈협회 등 생산자단체에서도 1월25일 기자간담회에서 품질을 균일화하겠다며 관리 방침을 내놓았지만 여파가 업계 전반으로 퍼지는 모양새다.
◆과지방 삼겹살 발생 원인은=과지방 삼겹살은 돼지의 특정 부위와 연관돼 있다. 삼겹살은 돼지 머리에서 꼬리 방향으로 흉추 5∼15번, 요추 1∼6번 사이에 있는 부위를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과지방이 형성되는 부위는 돼지 흉추 11∼12번 사이에 집중된다.
축평원이 2015년 발표한 ‘돼지 척추위치별 삼겹살 형태와 근육비율’에 따르면 측정 대상 삼겹살(712개) 단면의 전체 평균 근육비율은 49.38%로 나타났다.
하지만 흉추 11번의 삼겹살 단면 평균 근육비율은 45.34%, 흉추 12번은 45.78%에 불과해 다른 부위보다 유독 지방 비중이 높은 것으로 측정됐다. 해당 부위는 삼겹살과 등심이 맞닿는 곳으로 근육이 성장하지 않아 자연적으로 지방이 축적된다. 다만 지방 축적 정도는 계절적 요인과 사육 방식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 양돈농협 관계자는 “돼지는 겨울에는 체온을 보호하기 위해 지방이 축적돼 체중이 늘어나고, 여름에는 지방이 빠져 체중이 줄어드는 특성을 보인다”며 “지난해와 올해 모두 겨울·봄에 과지방 삼겹살 논란이 벌어진 것은 이같은 특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병석 한돈미래연구소 부소장은 “과지방이 형성되는 과정에는 품종과 사료·사양관리 등 너무 많은 요소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원인을 딱 하나만 꼽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육가공업계의 책임?…결국 비용의 문제=삼겹살 과지방 형성이 어느 정도 자연적인 현상이라면 판매 책임을 육가공업체와 유통업체에 물어야 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와 관련돼 있어서다.
통상 농가의 손을 떠난 돼지는 도축장에서 가공된 후 이분도체 형태로 1차 육가공업체에 전달된다.
1차 가공업체는 돼지 도체를 안심·등심·목심·앞다리살·뒷다리살·삼겹살·갈비 등으로 대분할 정형을 한다. 이후 또 다른 식육포장처리업체에 판매하거나 소분할 작업 후 직접 유통을 맡기도 한다.
문제는 이같은 육가공업체들이 소분할 작업을 하기 이전까지는 삼겹살이 과지방을 이뤘는지 여부를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충북 음성의 한 육가공업체 관계자는 “이분도체에서 대분할로 삼겹살을 정형하면 6∼7㎏의 덩어리가 나온다”며 “여기서 갈매기살·등갈비 등으로 소분할 작업을 진행해야 삽겹살이 과지방인지 알 수 있다”고 항변했다.
육가공업체 입장에선 돼지 도체를 구매할 때 과지방 여부를 모른 채 제 가격을 지불할 수밖에 없고, 이후 과지방이 포함된 것을 알았다고 해서 손해를 감수하고 해당 부위를 제거해 판매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같은 문제가 최종 판매처인 식자재마트 등에서도 이어져 결국 과지방 삼겹살 논란이 발생했다는 게 육가공업계의 진단이다.
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 관계자는 “돼지 한마리를 부위별로 정형해 판매하면 이익의 약 50%가 삼겹살에서 발생하는데, 삼겹살에 포함된 지방을 제거해 판매하는 것은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지방을 제거한다면 결국 그에 따른 소비자가격 인상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매뉴얼로 혼란 가중…근본 대책 마련해야=정부가 발간한 ‘삼겹살 품질관리 매뉴얼’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과지방 삼겹살 논란은 생산자와 관련 업계, 소비자 등이 머리를 맞대 품종 개량과 가격 인상 등을 두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하는 문제임에도 정부가 일률적인 기준을 마련하면서 오히려 현장에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매뉴얼은 소포장 삼겹살 지방 정선 사례를 소개하며 일반 삼겹살(박피·껍질을 벗긴 것)의 지방 두께는 1㎝ 이하, 오겹살(껍질이 붙은 삼겹살)의 지방 두께는 1.5㎝ 이하로 관리할 것을 권고했다.
서종태 부경양돈농협 계열화사업단장은 “매뉴얼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는 왜 지방 두께를 1㎝로 관리해야 하는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별다른 근거 없이 마련한 매뉴얼 때문에 최근 지방과 관련한 고객 불만사항이 크게 늘어 현장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히 이같은 매뉴얼이 지방 함량에 대한 취향을 반영해 품종 개량에 나선 한국 양돈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문정훈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푸드비즈니스랩 교수는 “국내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스페인산 ‘이베리코 돼지고기’에 대항하기 위해 지방 함량이 높은 흑돼지 계열의 품종을 개량해 고급화로 포지셔닝(자리매김)하는 게 최근 업계 흐름”이라며 “지방 함량을 일률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이같은 흐름과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과지방 삼겹살문제는 돼지고기 등급제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일주 다비육종 육종연구소장은 “과지방이 정말 문제라면 돼지고기 등급제를 손봐 제도적으로 지방 함량을 낮출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민우 기자 minwoo@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