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온 마을 무궁화로 물들인 경남 진주 류진원씨
입력 : 2023-10-03 11:00
수정 : 2023-10-03 11:00
농민신문 통해 ‘무궁화 전도사’ 정상영옹 알게돼
경기 용인 한달음 달려가 묘목 수백그루 분양
이후 전국 누비며 수십종 구해와 심고 가꿔
매년 6월말~10월 초 유동연못 둘레 수놓아
풀피리교육농장 운영…농업·농촌 가치 알리기도 ‘앞장’
류진원씨가 경남 진주 내동면 둔티산 정상에서 자신이 직접 가꾼 ‘무궁화 골짜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무궁화는 나라꽃인데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없는 어린이들이 많더라구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한그루, 두그루 심기 시작한 게 어느새 온 마을을 물들일 정도가 됐습니다.”

경남 진주시 내동면 유동마을 일대는 해마다 6월 말부터 10월 초순까지 100일 넘게 무궁화꽃이 활짝 피고 진다. 무궁화를 심고 가꾼 주인공은 이 마을 출신의 류진원씨(78). 류씨는 경기도 용인과 인근의 거창·하동·사천, 멀게는 울릉도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무궁화 묘목과 씨앗을 구해왔다. 2018년 ‘농민신문’에 ‘무궁화 전도사’로 소개된 정상영옹(90·경기 용인)이 무궁화 씨앗과 묘목을 분양한다는 기사를 본 게 그 시작이었단다. 

“공무원 생활을 마무리하고 자연환경해설사로 활동하며 초등학교에 강의를 나갈 일이 많았어요. 그런데 애국가에도 나오는 국가의 상징인 무궁화를 본 적이 없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학교에 무궁화 한그루 있는 곳도 드물었죠. 더 많은 사람이 무궁화를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직접 심고 가꿔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농민신문’에서 무궁화 묘목을 보급한다는 기사를 보고 경기 용인까지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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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 연못 인근 둘레길에 무궁화가 활짝 펴있다.

류씨가 무궁화 묘목을 집중적으로 심은 유동연못 주변은 무궁화꽃이 둘레 1.5㎞가량을 아름답게 수놓아 주민들과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연못 주변뿐 아니라 인근 둔티산 해맞이공원까지 이어지는 둘레길과 둔티산 정상에도 무궁화를 심어놨다. 

“일제강점기 때 군함 밧줄 등을 만드는 데 쓰려고 이 일대 산골짜기 수천평에 싸리나무를 잔뜩 심었습니다. 그 골짜기에 무궁화를 다시 심어 민족혼을 살리고 싶었죠. 이제 묘목들이 제법 자리를 잡아 무궁화 골짜기로 불러도 될 정도가 됐어요.”

류씨는 무궁화가 우리 민족의 정서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설명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가졌고, 병해충에 강하며 어느 토양에서나 끈기 있게 잘 자란단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아욱과 식물로서 인삼에 견줘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약성도 훌륭하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궁화는 여느 꽃보다 긴 기간, 한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110여일 동안 피고 지기를 되풀이한다. 피고 지는 기간이 긴 꽃 중 하나란다. 무궁무진(無窮無盡·끝이 없고 다함이 없음). 그래서 이름도 무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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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씨가 풀피리교육농장 앞마당에 세워놓은 허수아비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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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피리교육농장 인근에 있는 둠벙. 전통농업 방식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류씨는 무궁화에 더해 농업·농촌의 가치를 알리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유동연못 한쪽에는 류씨가 운영하는 ‘풀피리교육농장’이라는 이름의 농촌체험교육농장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교육농장에는 우리 전통 농기구와 생활용품이 전시돼 있고, 체험객들을 위한 굴렁쇠·투호 등 다양한 전통놀이 도구도 준비돼 있다. 마당 한쪽엔 각양각색의 허수아비를 세워놔 방문객에게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류씨는 “앞으로도 무궁화를 더 아름답게 가꾸고 알리는 일을 계속해나갈 것”이라며 “특히 어린이들이 농업·농촌의 소중함과 가치를 깨닫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진주=최상일 기자 csi@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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