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관리법 개정안 국회 통과] 민주당 “거부권 행사땐 대체입법”… 농업계 “빈손으로 끝날라”
입력 : 2023-03-26 15:21
수정 : 2023-03-27 05:01
앞으로 어떻게 될까
대통령실 “각계 우려 등 경청”
거듭 반대 의견…‘거부권’ 유력
재의결 현실성 낮아 폐기 전망
결국 부작용 두고 정쟁만 요란
농가 “중장기 관점 근본책 필요”
야당 “취지살려 다른 법안 준비”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23일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농업계는 개정안이 최초 발의된 2021년 12월 이후 이어진 약 1년4개월의 과정이 ‘빈손’으로 남게 될 것을 우려하면서, 정부와 정치권에 쌀값 폭락과 농가소득 감소를 막을 근본적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 유력=쌀 초과생산량을 정부가 전량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최종 통과하자 대통령실은 “개정안이 정부에 이송되면 각계 우려를 포함해 의견을 경청하고 충분히 숙고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표면적으론 신중론을 폈지만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이 개정안에 반대하는 뜻을 거듭 내비쳤던 점을 감안하면 거부권 행사 쪽에 무게가 실린다.

대통령은 법안이 정부로 이송된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에 재의 요구를 할 수 있다. 소관 부처가 재의안을 제시하면 법제처가 이를 안건으로 만들어 국무회의에 상정·의결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거부권 행사 요청을 공식화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브리핑에서 “정부는 국회에서 의결된 법안에 대해 그 뜻을 존중해야겠지만 양곡관리법 수정안은 부작용이 명백하다”면서 “농식품부 장관으로서 헌법에서 규정하는 ‘법률안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대통령에게)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여당도 같은 뜻을 내비쳤다.

이를 수용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첫 거부권 행사가 된다. 헌정 역사상 거부권 행사는 66번 있었다. 최초의 거부권 행사는 공교롭게도 1948년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양곡매입법안에 재의를 요구한 것이었다. 가장 최근에는 2016년 5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국회 상임위의 상시 청문회 개최’를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썼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을 국회가 재의결하려면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여당 의석수가 전체 의석의 3분의 1이 넘는 115석인 점에 비춰보면 국회로 돌아온 법안의 재의결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때 법안은 폐기된다.

◆농업계 빈손 결말 우려=농업계는 2021년산 쌀값 폭락을 계기로 촉발된 양곡관리법 개정 논란이 실익 없이 끝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양곡관리법 개정 출발에는 분명 농민들의 목소리가 있었다. 쌀값 폭락의 완충장치 역할을 하던 목표가격제(변동직불제)가 폐지된 상황에서 정부가 대안으로 공언했던 시장격리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농가들은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장격리 의무화 등의 장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농가 주장이 시장격리 의무화 등을 통한 ‘농가소득 안정’에 방점이 찍혔던 것과 달리 정치권은 ‘시장격리 의무화’의 부작용만을 두고 요란한 정쟁을 벌이다가 결국 빈손 결말로 향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동안 국민의 주식으로서 농정 중심에 자리했던 쌀은 이 과정에서 사양산업 논란에 섰고, 멸치·고등어 등과 비교되면서 내상도 입었다.

이대로 법안이 폐기되면 2021년산 쌀값이 ‘역대 최대’로 폭락했던 때와 견줘 달라지는 것이 없게 된다. 정부 의지에 따라 언제든 예산 규모가 달라질 수 있는 전략작물직불제 정도만 새로 도입됐을 뿐이다.

농업계가 정부와 정치권에 대안을 요구하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성명을 통해 “거부권 행사 후 정부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양곡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면서 ▲전략작물직불제 ▲식량작물공동경영체 육성사업 ▲식량작물 소비 기반 구축사업 ▲가루쌀(분질미) 활성화사업 등의 예산을 크게 확충하라고 촉구했다.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는 ▲저율관세할당(TRQ) 수입쌀 40만9000t 처리 방안 ▲쌀농가 소득 안정 대책 ▲공익형직불제 5조원 확대 방안을 요구했다.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길’은 “쌀 최저가격보장제 등 근본 대안을 만들라”고 주장한다.

◆민주당, 대체 입법 고려=더불어민주당은 일단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없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본회의를 하루 앞둔 22일 기자회견에서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개정안은 2020년 쌀 변동직불제를 공익직불제로 전환하면서 당시 정부가 농민에게 했던 (시장격리 관련) 약속을 이행하자는 것”이라면서 “민주당이 (수정안을 통해) 추가 안전장치까지 만들었는데도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건 농민을 적으로 돌리는 행위”라고 했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대체 입법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신정훈 의원(전남 나주·화순)은 “합리적인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쌀에 대한 종합적인 대안을 다시 내겠다”면서 “식량자급률을 법제화하고, 쌀 재배면적 조정을 의무화하는 내용 등으로 (법안을 발의해) 양곡관리법 취지를 살리겠다”고 말했다.

김승남 의원(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 역시 “만일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차원에서 쌀값 폭락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다른 법을 준비할 것”이라고 전했다.

여당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심도 있게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23일 본회의에서 반대 토론에 참여한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강원 속초·인제·고성·양양)은 “포퓰리즘 양곡관리법 개정안 대신 여야와 농민단체·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실질적으로 (농민에게) 도움이 되는 대책을 수립하자”고 주장했다.

양석훈 기자shakun@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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