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밥상] 낙지 ‘야들야들’ 국물 ‘담백’…“어느새 바다가 입안에”
입력 : 2023-03-14 16:17
수정 : 2023-03-15 05:01
[향토밥상] (25)충남 태안 ‘박속밀국낙지탕’
귀한 재료로 명성 높은 낙지
과거에는 발에 챌 만큼 흔해
바글바글 끓는 박속탕에 ‘쏙’
낙지 모두 건져서 먹고 나면
밀가루면·수제비 넣어 마무리
팔팔 끓는 국물에 낙지를 통째로 넣고 끓이는 이원식당의 박속밀국낙지탕. 야들야들한 낙지와 시원한 국물이 조화롭다. 태안=현진 기자

박속밀국낙지탕. 이름 한번 특이하다. 찬찬히 뜯어보면 이처럼 명료한 이름이 또 없다. 박 속을 나박나박 썰고 밀가루로 반죽을 빚어 통째로 손질한 낙지와 함께 끓인 탕이란 뜻이다. 충남 태안에서 즐겨 먹던 향토음식이다.

낙지는 현재 값비싼 보양식품으로 명성이 높지만 과거엔 흔하디 흔했다. 조선시대 실학자 정약용은 시 ‘탐진어가’에 “어촌에서는 모두가 낙지국을 먹네”라고 적었다. 낙지로 조리한 국·탕을 서민 누구나 일상에서 즐겨 먹었다는 말이다.

태안지역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가로림만에 인접한 이원면·원북면 개펄에선 낙지가 발에 챌 만큼 풍부했다. 어느 토박이는 “배고픈 시절을 버티게 해준 고마운 존재”라고 할 정도였으니 알 만하다.

흔한 걸로는 박도 지지 않았다. 전래동화 <흥부전>을 떠올려보자. 시골 초가집 지붕에 주렁주렁 박이 열린 풍경이 쉬이 눈앞에 그려진다. 이렇듯 예부터 태안에선 박과 낙지를 넣고 휘뚜루마뚜루 조리한 음식이 자주 상에 올랐다.

평범한 집밥이던 요리는 1960년대 들어 외식 메뉴가 됐다. 군 내 곳곳에 박속낙지탕 혹은 박속밀국낙지탕을 내놓는 식당이 하나둘 생기면서다. 그 가운데 원조로 꼽히는 곳은 1967년 이원면에 문을 연 이원식당이다. 지금은 식당 문을 연 고(故) 윤봉희씨 뒤를 이어 며느리 안국화 사장(63)이 2대째 운영하고 있다.

졸깃한 낙지와 푹 익혀도 설컹거리는 박을 함께 먹는다.

이원식당에서 박속밀국낙지탕을 주문하면 먼저 박속탕이 나온다. 납작하게 썬 박이 든 맑은 국물이 바글바글 끓으면 깨끗이 씻은 낙지를 넣는다. 낙지는 오래 익히면 질겨져 맛이 없다. 5분이면 낙지가 빨갛게 익는데 이때 머리는 두고 다리만 꺼내 잘라야 야들야들한 식감을 즐길 수 있다. 국물맛은 담백하다. 비릿한 바다맛은 은근하고 박에서 나온 달큼함은 깊다.

안 사장은 “맹물로 끓이는 것이 원조 박속밀국낙지탕”이라면서 “그래야 낙지맛이 깔끔하다”고 귀띔했다. 박은 꼭 무처럼 생겼다. 맛과 식감은 달지 않은 참외와 비슷하다. 푹 익혀도 설컹설컹 씹히는 박이 또 별미다.

낙지를 모두 건져 먹고 나면 그제야 밀가루면을 넣는다. 예부터 태안에서는 밀가루면이나 수제비를 넣은 국물 요리를 밀국이라고 불렀다. 밀가루의 ‘밀’을 붙였다는 말도 있고 반죽을 밀대로 밀었기에 밀국이라는 설도 있다. 안 사장은 “1970년대 아버지가 일을 하시고선 일당으로 밀가루를 받아오신 기억이 난다”면서 “탕 속 칼국수를 넣은 이유에도 그때 그 시절 형편이 묻어난다”고 말했다.

식당이 성업한 지도 반세기가 넘었다. 긴 세월만큼이나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초가집은 매끈한 양옥집이 됐고 낙지는 신분이 크게 올라 귀한 식재료로 대접받는다. 그러니 박속밀국낙지탕은 더이상 주린 배를 채워주는 서민 음식이 아니라 일부러 태안에 들러 맛봐야 할 귀한 향토음식이 됐다. 변함없는 것은 박과 낙지 모두 태안산을 쓴다는 사실이다. 세상이 좋아져 1년 내내 재료가 떨어질 일이 없지만 그래도 제철을 고르라면 박이 나오는 6∼7월이다.

태안=지유리 기자 yuriji@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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