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의 경제이야기 (72)한계적 사고
입력 : 2020-03-18 00:00
수정 : 2020-06-25 17:19

영국 경제학자 앨프레드 마셜 다윈 진화론 영향받아 개념 정립

우리의 삶은 한순간 비약보다 상황 향상시키는 노력 이어져

코로나19 사태도 노력 쌓이면 머지않아 해결될 것이라 기대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여행도 사치가 됐다. 세계 어디나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일상으로 빨리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여행과 관련지어 설명해보려 한다.

당신이 유럽을 여행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리스에서 멋진 시간을 보냈고, 이어 이탈리아 피렌체에 갔는데 지금까지 가본 곳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이제 오스트리아로 갈까 생각하다 고민에 빠진다. 혹시 오스트리아가 이탈리아에 비해 흥미로운 곳이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당신은 음식도 오스트리아보다 이탈리아 것을 더 좋아한다. 오스트리아에 갈 것인가, 아니면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경제학자들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그는 먼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방금 전까지 어디에 있었는지는 잊어라. 이탈리아에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같은 과거는 미래를 결정하는 데 중요하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하고 반문하면 경제학자는 이어서 말할 것이다. “오스트리아에 가서 누릴 수 있는 이득이 그곳에 가서 지불할 비용보다 클지 비교해보라. 만일 오스트리아에서 하루를 보내는 비용이 20만원인데 30만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두말할 것 없이 가라.”

“그럼 여행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경제학자는 말할 것이다. “여행을 하루 더 할 때마다 얻는 이익이 비용을 초과하는 한 여행을 계속하라. 그러다가 추가적인 하루 여행의 즐거움이 비용보다 낮아질 것 같으면 그땐 여행을 중단하라”고 충고할 것이다.

‘말이야 쉽지. 여행의 기쁨 같은 걸 어떻게 돈으로 계산할 수 있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꼭 무 자르듯 계산하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때 은연 중에 이와 비슷한 식으로 생각하며 답을 찾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학생이 몇시간을 공부할지 결정하려 할 때, 한시간을 더 공부할 경우 자신에게 어떤 영향이 오는지를 나름대로 생각해 결정을 내린다. 한시간을 더 공부함으로써 얻는 이득과 희생해야 할 즐거움을 저울질해 보는 것이다. 만약 앞의 것(경제학에서는 ‘한계편익’이라 한다)이 뒤의 것(‘한계비용’이라 한다)보다 크다는 생각이 들면 한시간을 더 공부하기로 결정할 것이다.

경제학은 사람들이 바로 이와 같은 사고의 과정을 거쳐 합리적인 선택에 이르게 된다고 보고 많은 경제 현상을 설명한다. 즉 기업이 자동차를 몇대나 생산할지, 소비자가 아이스크림을 몇개 사 먹을지 설명할 때 비슷한 과정을 거칠 것이라 가정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지에 대한 경제학 특유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경제학에선 ‘한계’의 개념이라고 하는데, 앨프레드 마셜이라는 영국 경제학자가 체계화했다. 현대 경제학 이론 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한계혁명’이란 말까지 나왔다.

안타깝게도 학생들에게 가르쳐보면 가장 헷갈리는 경제학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이 ‘한계’의 개념이다. ‘Marginal(마지널)’을 번역한 ‘한계’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쉽게 와닿지 않는데도 기인하는 것 같다. 영한사전에서 ‘Marginal’은 ‘미미한’ ‘중요하지 않은’이라고 돼 있는데, 왜 ‘한계’라고 번역했는지 모르겠다. 일본식 번역의 잔재 같다.

경제학에서 한계는 ‘마지막 하나의’ ‘추가적인’이란 뜻으로 쓰인다. 앞선 사례들에서 살펴보았듯이 한계의 개념은 ‘마지막 하나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고 결정한다’는 뜻으로 생각하면 된다.

마셜이 한계의 개념을 정립한 19세기 후반은 다윈의 진화론이 풍미하던 시절이었고, 마셜 역시 다윈의 영향을 받았다. 마셜이 쓴 <경제학원리> 첫 페이지에도 다윈의 말이 적혀 있다.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가 그것이다.

마셜의 한계주의는 경제학에 접목된 진화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많은 의사결정은 흑백논리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저녁식사를 할 때 우리가 내려야 하는 결정은 ‘굶을까 아니면 배 터지게 먹을까’라기보다는 ‘좀더 먹을까, 말까’이다.

우리의 삶은 한순간에 비약하기보다는 차근차근 자신의 주어진 상황을 향상시키는 노력으로 점철된다. 코로나19 사태도 우리의 점진적인 노력이 쌓이다보면 머지않아 해결될 것이라 기대해본다.

 


 

이지훈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 경제학 박사 ▲현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저서 <혼창통> <단(單)> <현대카드 이야기>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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