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건망증과 달리 장기간에 걸쳐서 진행 갑자기 예민해지거나 화를 내면 의심 가능 감정 표현 줄고 무기력…우울증과 착각 쉬워 60세 이상은 무료로 치매선별검사 가능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 치매를 일컫는 또 다른 이름이다. 치매는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라, 뇌세포가 서서히 퇴화하면서 장기간에 걸쳐 증상이 진행되는 퇴행성 질환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중한 추억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까지 잃어가며, 심하면 정상적인 인지 능력과 사회적 기능을 상실해 일상생활조차 어렵게 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3년 국내 치매 환자 수는 67만명에 달했으며, 이 수치는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이런 치매는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조기 치매의 신호에는 어떤 게 있을까.
◆치매란=치매는 후천적으로 기억, 언어, 판단력 등 여러 영역의 인지 능력이 감소하는 병을 뜻한다. 치매에는 알츠하이머병이라고 불리는 노인성 치매와 중풍 등으로 생기는 혈관성 치매가 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원인이 존재한다. 뇌 손상을 일으키는 모든 질환이 치매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중 알츠하이머병이 전체 치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는 두뇌의 수많은 신경세포가 서서히 퇴화하면서 뇌 조직이 손실되고 뇌가 위축되는 질환이다.
치매는 주로 건망증과 헷갈리기 마련이지만 건망증은 기억력이 저하될 뿐 판단력은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기억력 장애에 따라 불편함을 느끼긴 하지만 잊어버렸던 내용에 대해 힌트를 주면 기억해 내기도 한다. 치매는 기억력이 감퇴할 뿐만 아니라 언어 능력, 시공간 파악 능력, 인격 등 다양한 정신 능력에 장애가 발생하며 지적 기능이 감퇴한다.
◆갑자기 예민해지고 공격적이면 의심을=치매는 초기 증상을 간과하기가 쉽다. 하지만 평소와 다른 성격 변화 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성격 변화는 예민하고 공격적인 태도다.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거나 참을성이 줄고 비논리적인 말을 많이 한다. 심하게 고집을 부리거나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곤 한다. 우울하거나 무기력증에 빠질 수 있고 중요한 결정을 제대로 못 하고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인다. 즐기던 활동에 흥미를 잃고 감정 표현이 부쩍 줄기도 한다. 잠이 늘어나는 일도 잦아진다. 문제는 이런 성격 변화가 치매 증상이 아니라 우울증이나 노화 등으로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또 자신보다 가까운 가족이 느낄 가능성이 높다.
성격 변화 외에도 초기 증상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많다. 이미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거나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조심해야 한다. 자주 가던 길도 헤매게 된다. 복잡한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거나 여러 가지 일을 한 번에 못 해도 치매일 수 있다. 가령 젓가락이 서툴러져 음식을 자주 흘릴 수 있다. 음식하던 사람은 간을 맞추기 어려워진다. 원래는 깔끔했던 사람이 옷차림에 갑자기 신경 쓰지 않아도 의심할 수 있다.
치매의 체크리스트
최근 6개월간의 해당 사항에 확인해 주세요.
1. 어떤 일이 언제 일어났는지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다.
2. 며칠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잊는다.
3. 반복되는 일상생활에 변화가 생겼을 때 금방 적응하기가 힘들다.
4. 본인에게 중요한 사항을 잊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배우자 생일, 결혼기념일 등)
5. 어떤 일을 하고도 잊어버려 다시 반복한 적이 있다.
6. 약속을 하고 잊은 때가 있다.
7. 이야기 도중 방금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를 잊을 때가 있다.
8. 약 먹는 시간을 놓치기도 한다.
9. 하고 싶은 말이나 표현이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10. 물건 이름이 금방 생각나지 않는다.
11. 개인적인 편지나 사무적인 편지를 쓰기 힘들다.
12. 갈수록 말수가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13. 신문이나 잡지를 읽을 때 이야기 줄거리를 파악하지 못한다.
14. 책을 읽을 때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읽어야 이해가 된다.
15. 텔레비전에 나오는 이야기를 따라가기 힘들다.
16. 전에 가본 장소를 기억하지 못한다.
17. 길을 잃거나 헤맨 적이 있다.
18. 계산 능력이 떨어졌다.
19. 돈 관리를 하는 데 실수가 있다.
20. 과거에 쓰던 기구 사용이 서툴러졌다.
※ 이 설문지는 환자를 잘 아는 보호자가 작성하는 설문지로 20개 중 10개 이상이면 치매 가능성이 높다.
국민건강보험
◆빨리 치료할수록 진행 늦춰=치매는 조기에 발견하면 중증으로 진행될 확률을 절반이나 줄이게 된다. 처음에는 병원 설문을 통해 치매 자가 진단을 해도 좋고 60세 이상은 치매 선별검사를 보건소(서울은 중앙치매센터)에서 무료로 하고 있다.
치매는 원인별로 치료 방법이 달라진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 따르면 알츠하이머 치매는 인지기능 개선제를 복용하게 된다. 병의 진행을 늦출 순 없지만 경과를 늦추는 게 가능하다. 초기에는 약 6개월~2년까지도 지연시킬 수 있다. 약물 치료와 함께 꾸준한 신체활동, 학습활동, 사회활동 등을 함께 해서 치매를 늦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보호자의 태도도 중요하다. 대부분 보호자는 치매 환자의 헛소리에 힘들어하는데, 이 내용의 사실 여부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정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전문가들은 권한다. 다른 주제로 넘어갈 수 있도록 전환을 시도해도 좋다. 또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도 가볍게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오겠다는 마음으로 시도해 볼 수 있다. 또 치매안심센터나 보건소에 치매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여러 상담 프로그램도 있으니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좋다. 그러면 배회, 실종, 운전, 시설 입소 등에 대한 여러 준비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도움말=국민건강보험, 중앙치매센터,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누리집, 서울아산병원 누리집
박준하 기자 june@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