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재탄생] 지역 문화와 공동체 살리는 살아 있는 예술 전시 공간
입력 : 2025-06-13 00:00
수정 : 2025-06-13 05:00
[학교의 재탄생] (25)전북 남원 수지미술관 

수장고·체험장·교육장·정원 등 갖춰 
문화예술인 초청해 전시·공연 열고 
주민들에 예술과 함께하는 시간 선사 
인근 초등학교 연계 미술수업도 진행 

잊힌 남원의 문화·역사 알리는데 앞장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 찾아 보호해야”
13_01 복사
수지미술관 야외 정원의 조형물들. 관람객이 그네 타듯 올라타볼 수 있는 참여형 작품 ‘함께하는 그네’(한정무 작가)가 가운데 보인다.

동네 산책하듯 쉽고 편하게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전북 남원시 수지면 초리에 자리한 수지미술관이다. 1993년 폐교한 남수지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이곳의 야외 정원에선 관객 참여형 조형 작품과 함께 생생한 예술을 체험해볼 수 있다. 옛 학교 건물은 건축미를 자랑하는 공간으로 변신해 또 하나의 작품이 됐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들어선 미술관은 마을주민은 물론 전국에서 방문객들이 찾아오는 열린 예술 공간이 됐다.

13_02 복사
수지미술관 외관. 낡은 폐교가 훌륭한 디자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박상호 관장은 미술관을 개관하는 게 오랜 꿈이었다. 적당한 곳을 알아보던 중 20여년 전 문을 닫은 남수지초 부지를 매각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전남 보성 출신이지만 남원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금수정·교룡산성 같은 남원을 대표하는 건축 문화유산은 한국화가인 그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미술 소재였기 때문이다.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찾아간 학교는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폐허가 돼 있었다. 폐교 후 15년 동안 버려져 있던 학교는 2009년에 범죄 예방 체험학교인 ‘비둘기학교’로 새롭게 문을 열었지만 그마저도 얼마 가지 못했다.

박 관장은 2014년 부지를 매입한 뒤 낡은 시설을 보수하고 내부 구조를 변경하는 등 대대적인 개조 공사를 했다. 전체 9917㎡(3000평) 부지에는 옛 학교 본관을 리모델링한 미술관 건물과 체험장, 야외 정원이 들어섰다. 본관의 교실·교무실·행정실 등은 전시실과 수장고·자료실·학예연구실·쉼터 등으로 탈바꿈했다. 실내 곳곳에 마련된 통창은 외부 풍경을 관조할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전시 공간이다. 특히 전시실 입구의 통창 공간은 창밖의 나무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 명소가 됐다. 옛 중앙 현관은 건축적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세련된 중정으로 변신했다.

13_03 복사
올해 수지미술관 초대작가로 선정된 임근우 작가의 작품 ‘루시와의 키스’.

2015년 공식 개관한 수지미술관의 초대 관장은 그의 아내이자 서양화가였던 고(故) 심은희씨다. 박 관장은 아내에 이어 2대 관장을 맡고 있다. 그의 아들 박준현씨는 현재 수지미술관 학예실장으로 활동 중이다.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학예사로 일하던 박 실장은 부모가 미술관을 열고 인생 2막을 시작한다고 하자 흔쾌히 합류했다.

박 관장은 미술관을 운영하면서 지방소멸이란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하고는, 지역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문화사업과 미술 교육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9년 진행된 전국 최대 규모의 미술축제(2019 미술주간)에 참여해 선보인 ‘미술관의 밤-별이 빛나는 밤에’는 수지미술관이 문화공간으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한 행사였다. 지역의 문화예술인을 초청해 전시·공연을 하고, 주민들에게 예술과 함께하는 시간을 선사했다. 특히 초리마을 주민들이 모은 마을 사진에 스토리를 덧입혀 만든 영상, 일명 ‘초리시네마’는 적막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은 이벤트였다. 인근에 있는 수지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미술 수업도 6년째 이어오고 있다.

13_04 복사
미술관 중정에서 포즈를 취한 박상호 관장.

박 관장은 “수지초등학교가 우리 미술관과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학생수가 증가해 폐교 위기를 극복했다”며 “지방소멸 시대에 지역을 활성화하는 데 문화 시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075eb2c1-46a5-11f0-8e06-9104d2cb31e4
박 관장이 관람객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남원=김도웅 프리랜서 기자

수지미술관은 개관 이후 매년 네차례 다양한 주제의 전시회를 열고 있다. 특히 2년마다 진행하는 ‘미술 교과서 산책전’은 교과서에 수록된 작가들의 작품을 집중 탐구하는 기획전이다. 올해는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주제로 작업하는 임근우·엄혁용 작가가 이 전시회의 초대 작가로 선정됐다. 지금 수지미술관을 찾으면 두 작가의 작품과 전곡선사박물관·전북대학교의 소장 유물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박 실장은 “미술 교과서에서 인쇄물로 접했던 작품들을 실제로 만날 수 있도록 기획한 전시”라며 “작품의 색감·질감·입체감 등을 오롯이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수지미술관은 남원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알리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2019년 열린 김호경 사진가의 ‘잊어졌던 얼굴 남원의 석장승’ 전시는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잊힌 석장승들을 재조명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박 관장은 “지역의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를 찾아 보호해야 한다”면서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이러한 문화유산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데 힘을 보태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남원=박자원 프리랜서 기자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