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의 변천사
입력 : 2015-08-31 00:00
수정 : 2015-08-31 00:00
20150829161324.jpg
만화틀2
 우리 만화의 역사는 100년이 조금 넘는다. 1909년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이도영의 ‘삽화’가 최초의 만화로 기록돼 있다. 첫 만화책(단행본)인 <토끼와 원숭이> (1946년)가 나오기 이전까지 만화는 신문이나 잡지에 곁다리로 끼어서 대중적 지지를 얻어왔다. 광복 후 신문·잡지가 복간되고 창간되면서 만화의 자리가 생겼으며, 어린이를 위한 만화책이 나왔다.



  ○1950~1960년대 본격 만화시대 도래…전국에 만화방 확산

 우리나라 만화에서 최초의 베스트셀러로 꼽을 수 있는 작품은 김종래의 <엄마 찾아 삼만리> (1958년)이다. 초판 이후 1964년까지 10번이나 판을 갈며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술과 노름에 빠진 아버지 때문에 팔려간 엄마를 찾아 전국을 떠도는 어린 소년의 눈물겨운 이야기는 전쟁으로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고 달래주었다.

 같은 시기에 나온 김산호의 <라이파이> (1959년)는 에스에프(SF·공상과학) 장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 당시 파격적인 실험작으로 꼽힌다. 4부작에 걸쳐 모두 32권이 나올 만큼 인기도 끌었다. 마침 전국적으로 만화방이 생겨나 급속하게 퍼져나가던 때이다. 이때 박기당·박기준·오명천 등이 활약했고, 임창은 <땡이> 시리즈를 선보였다. 방영진의 <약동이와 영팔이> 는 시대상을 코믹하게 담아냈다.

 1960년대 중반에 만화는 큰 변화와 발전의 조짐을 보인다. 그 중심에는 어린이 잡지가 있다. 1964년 나온 <새소년> 에 이어 육영재단에서 <어깨동무> (1967년), 중앙일보사에서 <소년중앙> (1968년)을 발행했다. 이들 잡지는 어린이 관련 기사를 비롯해 소설·동화·동시·만화 등을 주로 다뤘는데, 갈수록 만화의 비중이 커졌다.



  ○1970년대 명랑만화 인기…성인만화 스포츠신문 연재

 1970년대 잡지의 영향력은 만화에 따라 결정됐을 정도다. 이 시대 작가들은 간결한 그림체의 명랑만화로 재밌는 웃음을 안겨줬다. <꺼벙이> (길창덕), <로봇 찌빠> (신문수), <요철 발명왕> (윤승운) 등은 지금 40대 후반 50대라면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것이다. 동시에 <주먹대장> (김원빈) 같은 극화만화가 연재를 거듭할수록 그림이 정교해지면서 캐릭터가 다듬어졌다. <주먹대장> 은 1960년대 만화방용 책으로 먼저 나왔다가 1975년부터 <어깨동무> 에 9년간 장기 연재됐다. 한쪽 주먹이 기형적으로 커서 놀림받던 소년 <주먹대장> 은 한국형 슈퍼히어로의 초기 모델로 볼 수 있다.

 성인만화가 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고우영이 <임꺽정> 을 연재한 것은 <일간스포츠> 신문 지면이다. 장편만화가 매일 신문에 실린 것은 이때가 처음으로, ‘신문만화=어른만화’로 인식됐다. 고우영의 대표작 <삼국지> 와 <일지매> 등이 모두 신문 지면에 실렸다. 같은 때 성인잡지 <선데이서울> 에 나온 박수동의 <고인돌> 시리즈도 성인만화로 손꼽히는 수작이다.



  ○1980년대 성인극화 인기…‘보물섬’ 등 만화잡지 등장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1983년)은 만화 대중화를 이끈 최고의 흥행작이다. 대형 히트작에는 새로운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다. 까치 오혜성은 “강한 것이 아름답다”며 한 여자(엄지)를 향한 불타는 사랑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새로운 젊은 영웅의 탄생이다. 동시에 만화의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도 이전과는 달랐다. ‘애들이나 보는 만화’라는 통념을 깬, 성인을 위한 이야기와 극화 연출의 빠른 전개, 비극적인 결말 등이 그렇다. 숱한 아류작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현세보다 앞섰던 허영만도 이에 자극 받았다. 이때만큼은 이현세의 이야기 방식에 귀 기울였고 전체 만화계의 화풍에도 변화가 있었다.

 1980년대는 만화만을 두껍게 묶은 <보물섬> (1982년), <만화광장> (1985년), <주간만화> (1987년), <아이큐점프> (1988년) 등의 만화잡지가 등장한 시대다. 만화잡지는 안정적인 작품 발표의 장(場)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홍보하는 역할을 맡았다. 국민 캐릭터로 사랑받는 김수정의 ‘둘리’는 <보물섬> 에 10년간 장기 연재하며 한국만화가 캐릭터 산업으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 당시 젊은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만화가 또 있다. 박재동이 매일 그리는 시사풍자 만화가 그것. 1988년 <한겨레신문> 이 나오면서 신문 한켠을 차지한 ‘한겨레 그림판’은 시사만화의 역사를 다시 썼다는 평을 받는다. 박재동은 정권의 속살까지 파헤친 신랄한 풍자로 소시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만과 시대의 갈등을 표출했다.



  ○1990년대 이후 일본만화 인기…스마트폰으로 웹툰 골라봐

 우리 만화는 일본만화와 직접 관련돼 있다. 이미 1950년대 초 일본만화 <밀림의 왕자> 를 거의 그대로 베낀 만화가 시중에 풀려 큰 인기를 끈 일이 있다. 일본이 전 세계 공략에 성공했던 히트작인 <드래곤볼> 과 <슬램덩크> 는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발휘했다. 이들 작품이 실린 국내 잡지는 판매부수를 매주 갈아치워 주간 판매부수가 20만부까지 올라갔다. <슬램덩크> 는 농구 문화를 생활 속 깊숙이 끌어들였다. 이후에도 <나루토> <원피스> 같은 일본 인기작은 우리 만화시장을 주도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일본 문화를 단계적으로 개방하기 훨씬 이전부터 일본만화는 이미 개방이 이뤄졌던 것이다.

 무협코믹 만화 <열혈강호> (양재현·전극진)는 최근 67권째까지 나왔는데, 작품의 시작은 1994년 <영챔프> 에 연재하면서부터다. 잡지는 훨씬 전에 폐간되고, 인터넷에서 연재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겨울 74권으로 대단원의 막을 대린 <짱> (임재원)은 <열혈강호> 보다 앞서 1990년 초부터 주간 만화잡지 <챔프> 에 연재된 작품이다. 이밖에 199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진짜 사나이> (박산하), <오디션> (천계영), <힙합> (김수용) 등이 있다.

 지난해 드라마로 방영돼 <미생> 신드롬을 일으킨 윤태호는 작가 개인으로 보면 1980년대 창작의 동기를 얻고, 1990년대 성공과 실패를 겪으며, 현재 인터넷시대까지 와서 웹툰을 실험하고 웹툰으로 성공한 세대다.

 우리 만화의 현주소 혹은 지금의 정체성이라고 할 웹툰이 나온 지 이미 10년이 더 됐다. 지금은 웹툰을 보는 사람이 가장 많은 시대다. 만화와 멀어져 있던 기성세대, 우리 이웃의 아줌마와 아저씨들이 스마트폰만 열면 쉽게 작품을 볼 수 있다. 웹툰에는 골라 볼 수 있는 만화가 얼마든지 있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찾아 만화의 세계에 풍덩 빠져보자.

 이재식(만화평론지 <크리틱엠> 발행인)
댓글 2